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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증약리 찰방허직휼민선정비(郡北面 增若里 察訪許稷恤民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군북면 증약리 찰방허직휼민선정비(郡北面 增若里 察訪許稷恤民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2. 14:08


허직은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승정원일기 126책 (탈초본 2659책) 철종 13년 12월 3일 경진 8/25 기사 1862년  同治(淸/穆宗) 1년                                  

          

○ 有政。 吏批, 行判書李謙在, 參議洪淳大牌招不進, 參判李興敏進, 承旨進。 以吏批言啓曰, 行判書李謙在, 參議洪淳大竝牌招不進, 小臣獨政未安。 何以爲之? 敢稟。 傳曰, 仍爲之。 以沈宜益爲敦寧都正, 鄭海尙爲同義禁, 李源命爲知經筵, 申弼輔海南縣監, 裵憲璋高山察訪, 許稷栗峰察訪, 軍器判官林鳳章, 加一瓜事, 承傳。이라고 적혀있습니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1862년(철종13년)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고종 2)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을, 1866년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1867년 사헌부 감찰(監察)로 재직중에는 명륜당(明倫堂)과 비천당(丕闡堂)에서 열린 식년시(式年試)에 시험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870년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을 지냈고 1872년에 자인현감(慈仁縣監)에 제수되어 외직으로 나갔다.


#가주서 라함은 조선시대 승정원의 대리 임시관직을 말합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행찰방허공직휼민선정비( 行察訪許公稷恤民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을축년(乙丑年.1865년)이다.


허직이 지낸 율량도찰방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조선시대의 교통·통신기관인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관리를 칭한다.

역참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경의 중요한 군사정보, 그리고 사신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를 위하여 마련된 교통·통신기관의 하나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참은 군사·외교 외에 중앙집권을 유지하기위한 행정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역참의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역로의 조직과 역원 및 역마의 확보였다. 조선시대 충청도에는 6개의 역참도가 있었으며 율봉도(栗峰道)가 그 중 하나이다.
율봉도 찰방(察訪)은 문관 종6품의 외관직으로 마관(馬官), 우관(郵官)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30개월마다 교체하였다. 청주 역원 중 하나였던 율봉역에는 1명의 찰방이 있어 본도의 율봉(栗峰), 저산(猪山), 진천현(鎭川縣)의 장양(長陽), 태랑(太郞), 청안현(淸安縣)의 시화(時化), 문의현(文義縣)의 덕유(德留), 옥천현(沃川縣)의 증약(增若), 가화(嘉和), 토파(土坡), 순양(順陽), 화인(化仁), 영동현(永同縣)의 회동(會同), 황간현(黃澗縣)의 신흥(新興), 보은현(報恩縣)의 원암(原岩), 함림(含林), 회덕현(懷德縣)의 전민(田民) 등 17개 역을 찰방하였다.



허직의 불망비는 청주시 율봉공원내에 1기가 존재하며 보은에 학림리에 1기가 있고 옥천향토전시관에 반토막으로 조각난 불망비가 1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