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원면 백지리 울산박씨세거지비(伊院面 白池里 蔚山朴氏世居之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이원면 백지리 울산박씨세거지비(伊院面 白池里 蔚山朴氏世居之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2. 7. 14:56



이원면 백지리 오룡골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울산박씨 세거지비입니다.자연석을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백지리는 울산박씨들이 대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울산(蔚山)은 경남 동해안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때 굴아화촌이었으며, 경덕왕때 와서 하곡,또는 하서라 하였으며, 고려때 흥려부, 공화현, 울주로 고쳤고 별호로 학성이라 불렸으며, 조선때 울주군이 되었다가, 1962년 방어진읍과 하상면,대현면,농소면의 일부가 울산시로 승격되었다.

울산박씨(蔚山朴氏)는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인 국상공 교순(交舜)의 7세손 윤웅(允雄)을 중조로 받들어 기일세하여 왔다. 울산박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국감 경목(慶穆)의 손자이며 평장사 형립(亨立)의 둘째 아들로 울산현교동에서 태어나, 1099년 동여진의 10만 대군이 침공해 왔을때 이를 물리쳤고, 예종때 재침한 여진족을 윤관,오연총 장군과 더불어 격퇴시켜 대장군에 올라 흥려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후대로 내려와 종파인  용당파(龍塘派)를 비롯하여 20개 파로 갈라졌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중시조 윤웅(允雄)의 아들 우(祐)가 이부상서를 지내고,증손 연(演)은 봉의랑으로 합문지후를 역임하여 가문의 중흥을 이루었다.
고려 말 감무를 지내고 한림의 벼슬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던 유(愈)는 봉상시정 길우(吉佑)의 아들로 후에 예산 대흥으로 옮겨 살면서 다시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으며,대제학 천익(天翼)의 아들 인량(寅亮)은 한성판윤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는 임진왜란때 이문(而文), 영정(英挺)이 유명했고, 율은 현종때 은산현감을 거쳐 장령에 이르렀으며, 두세(斗世)는 숙종때 목사와 지중추부사를 지내고 당시 조정의 정책과  사회의 제도를 문답식로 날카롭게 풍자한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를 저술하여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