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법주사
- 티스토리챌린지
- 국립청주박물관
- 곡산연씨
- 보성오씨
- 충주박물관
- 한독의약박물관
- 문의문화재단지
- 밀양박씨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각연사
- 공주박물관
- 효자문
- 문경새재
- 화양동 암각자
- 충북의 문화재
- 공산성 선정비
- 단지주혈
- 경주김씨
- 화양구곡
- 부도
- 청풍문화재단지
- 청주박물관
- 효자각
- 부여박물관
- 오블완
- 사인암
- 사과과수원
- 상당산성
- 선돌
- Today
- Total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산면 예곡리 예곡정사(靑山面 藝谷里 藝谷精舍) 본문
예곡정사는 충북문화재자료 제 8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
옥천군 예곡2길 13-26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느 농촌같이 에곡리도 조용합니다. 마을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견공들의 목소리만 동네를 울립니다. 골목길 끝 산자락 밑에 예곡정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담장도 새로 들렀고 단청도 새로 칠했습니다.
예곡정사는 조선 숙종 6년(1680년) 광산김씨 김광로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 양성을 위한 정사로 축조한 것이나 나중에 문중에서 재실로 사용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예곡 마을 뒤편에 풍수지리학으로 길지에 자리하고, 씨족 마을의 구성과 이웃에 진사댁 등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상에곡은 일찌기 광산김씨중시조 김광로는 우암의 주자학적 예학과 에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또한 김광로의 이종형인 우암 송시열이 이곳 예곡정실을 드나들며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군자 육에(六禮)를 즐겨하였으며 예곡정사의 현판과 이모 선산곽씨묘비명을 부산에서 해석(海石)을 구해다 세웠다는 우암의 친필이 아직까지도 전해지며 남아있다.
고직사는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축물로 목구조의 치목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고, 전반적으로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자료로써 보존할 가치가 있다. 특히 정사와 고직사 사이에 창고가 있는데 상량에 1888년으로 기록되어 건물의 연혁을 밝혀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곡리(藝谷里)는 청산현 북면 예곡리(藝谷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예곡리를 삼방, 법화, 명티, 예곡 등으로 분구되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이나 1891년의 기록에 청산현 북면 예곡리라 하여 83호가 거주한 것으로 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청산군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영속케 되었으며, 동면, 현내면, 북면 일부를 합하여 청산면이 되면서 예곡리가 삼방, 명티, 법화, 예곡리(禮谷里)로 나뉘어 졌다.
예곡리(藝谷里)라 부르게 된 것은 “예실”이라고 부르는 옛말을 발음대로 한자를 쓴 것이다. 충정공 송시열의 친필 “예곡정사(藝谷精舍)”의 문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예곡리는 자연마을로 윗예실과 신촌, 아랫예실 세개의 마을로 되어있다.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집성촌으로 호랑이 모양의 산세가 품고 있다는 마을 상예곡에는 1919년 김철수, 김인수, 김지수, 최남석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했던 나라 사랑이 남다른 충혼의 마을이기도 하다.
하예곡리는 능성구씨(陵城具氏)와 밀성박씨(密城朴氏)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예곡삼경이라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보청천 맑은 물로 옥토를 이뤄 잘사는 마을이다. 또한 병자호란 때 박문강 충신을 기리는 충신비가 세워져 있다. 예곡초등학교는 1943년 4월 1일 문을 열어 1995년 3월 1일 폐교하고 그 자리에 천연염색을 하는 업체가 들어서 있다. 1955년에 설립한 천주교회 예곡공소, 1981년 개소한 예곡보건진료소가 마을의 명소이다.
마을뒤 산세가 끝나는 곳에 큰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백호바위가 있으며, 이곳에서 풍류만을 즐기고 농사일과 시주공양에 인색한 주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한 스님이 백호바위 근처에 연못을 파면 마을에 부귀영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리자 온 동네 사람들이 농사일을 전폐하고 연못을 팠다. 그 결과 그해 농사를 망쳐 초근목피로 연명할 지경이 되어서야 깨닫고 순리대로 살며 마을이 합심단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백호바위에는 음각된 서체가 남아있고 수령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들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마을 어른들이 이곳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였으나 1960년말 하천제방의 축조공사로 그 흔적이 일부 사라져 아쉽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원당산, 매봉산과 팔음산에 발원한 예곡천으로 명당 중의 명당인 마을로 일제강점기에 예곡리(禮谷里)로 강제로 개명되었다가 2006년 11월 20일 예곡리(藝谷里)로 환원한 마을이다.해방이전에 준공된 예실저수지가 있다.
'충북의 바람소리 > 옥천군(沃川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산면 백운리 백운리고가(靑山面 白雲里 白雲里古家) (0) | 2016.12.14 |
---|---|
군북면 용호리 화일2호선돌(郡北面 龍湖里 화일2호선돌) (0) | 2016.12.13 |
청산면 교동리 정순철벽화(靑山面 校洞里 鄭順哲壁畵) (0) | 2016.12.12 |
동이면 금암리 양신정(東二面 金岩里 養神亭) (0) | 2016.12.08 |
옥천읍 수북리 밀양박씨절부비(沃川邑 水北里 密陽朴氏節婦碑) (0) | 2016.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