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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예곡리 숭례재(靑山面 藝谷里 崇禮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예곡리 숭례재(靑山面 藝谷里 崇禮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2. 29. 08:47



청산면 예곡리 하에곡에 있는 숭례재입니다.벽돌담을 두르고 있으며 양기와를 얹고 있습니다.



예곡리(藝谷里)는 청산현 북면 예곡리(藝谷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예곡리를 삼방, 법화, 명티, 예곡 등으로 분구되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이나 1891년의 기록에 청산현 북면 예곡리라 하여 83호가 거주한 것으로 되었다. 2007년말 현재 상예곡에 44호 120명, 하예곡에 77호 154명이 살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청산군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영속케 되었으며, 동면, 현내면, 북면 일부를 합하여 청산면이 되면서 예곡리가 삼방, 명티, 법화, 예곡리(禮谷里)로 나뉘어 졌다.


예곡리(藝谷里)라 부르게 된 것은 “예실”이라고 부르는 옛말을 발음대로 한자를 쓴 것이다. 충정공 송시열의 친필 “예곡정사(藝谷精舍)”의 문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예곡리는 자연마을로 윗예실과 신촌, 아랫예실 세개의 마을로 되어있다.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집성촌으로 호랑이 모양의 산세가 품고 있다는 마을 상예곡에는 1919년 김철수, 김인수, 김지수, 최남석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했던 나라 사랑이 남다른 충혼의 마을이기도 하다.


하예곡리는 능성구씨(陵城具氏)와 밀성박씨(密城朴氏)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예곡삼경이라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보청천 맑은 물로 옥토를 이뤄 잘사는 마을이다. 또한 병자호란 때 박문강 충신을 기리는 충신비가 세워져 있다. 예곡초등학교는 1943년 4월 1일 문을 열어 1995년 3월 1일 폐교하고 그 자리에 천연염색을 하는 업체가 들어서 있다. 1955년에 설립한 천주교회 예곡공소, 1981년 개소한 예곡보건진료소가 마을의 명소이다.


마을뒤 산세가 끝나는 곳에 큰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백호바위가 있으며, 이곳에서 풍류만을 즐기고 농사일과 시주공양에 인색한 주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한 스님이 백호바위 근처에 연못을 파면 마을에 부귀영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리자 온 동네 사람들이 농사일을 전폐하고 연못을 팠다. 그 결과 그해 농사를 망쳐 초근목피로 연명할 지경이 되어서야 깨닫고 순리대로 살며 마을이 합심단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백호바위에는 음각된 서체가 남아있고 수령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들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마을 어른들이 이곳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였으나 1960년말 하천제방의 축조공사로 그 흔적이 일부 사라져 아쉽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원당산, 매봉산과 팔음산에 발원한 예곡천으로 명당 중의 명당인 마을로 일제강점기에 예곡리(禮谷里)로 강제로 개명되었다가 2006년 11월 20일 예곡리(藝谷里)로 환원한 마을이다.
해방이전에 준공된 예실저수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