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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신궁리 용산사(內北面 新宮里 龍山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내북면 신궁리 용산사(內北面 新宮里 龍山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1. 19. 06:38





진주강씨 복천공파의 사당인 용산사(龍山祠)입니다

상궁 저수지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사당앞으로는 복천공파 사당건립기념비와 진주인 강희동의 공적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산사는 진주 강씨(晋州 姜氏) 복천공파 선조의 제항을 올리는 사당으로 1992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면에 ‘龍山祠’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사우 앞에 사당건립기념비가 있다.


강씨()의 최초 성()을 가진 사람은 중국의 염제신농()이라 한다. 한국의 강씨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을 시조()로 모시고 관향()을 진주()로 정하였다. 강이식 장군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 수나라를 공격하였으며, 598년에는 5만의 군사로 임유관()에서 30만 수나라 군을 대파하였다. 진주에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가 있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하게 된 것은 고구려 멸망 후 강진()이 중국의 당과에 급제한 후 태중대부판내의령()을 역임하다가 진양후()에 봉해진 이후이다. 그 후손들이 이 지방에 정착하여 문벌을 떨쳤다. 이러한 진주 강씨는 크게 은렬공파, 인헌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등 다섯 파로 나뉘고 이후 여러 파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강()’자를 씨()로 삼는 성씨는 진주를 단일본으로 하고 있다. 진주강씨[晉州姜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신궁리(新宮里)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궁평리(宮坪里)와 세촌리(世村里), 신평리(新坪里)의 각 일부왕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의 상궁리(上弓里), 중궁리(中弓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과 궁평의 이름을 따서 신궁리(新宮里)라 하고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다가 1946년 (內北面)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