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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현리 마을자랑비(伊院面 縣里 마을자랑비)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이원면 현리 마을자랑비(伊院面 縣里 마을자랑비)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1. 28. 16:10


이원리는 원래 옥천군 이내면(利內面) 현리(縣里)와 역리(驛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이내면 현리라 하여 106호, 역리에 41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에는 현리 64호, 역리 61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을 전면적으로 조정하면서 면의 이름을 이내면(伊內面)으로 고치고 현리와 역리가 합하여 이원리가 되었다. 2007년말 현재 현남에 29호 52명, 현리에 78호 202명, 두암에 29호 71명이 살고 있다. 1929년 이남면과 이내면이 합하여 이원면이 되면서 이 마을이 면소재지가 되었다.


이원리가 된 것은 현리는 이내면의 소재지였기에 이내면(伊內面)의 이(伊)자와 역말에 토파역(土坡驛)과 우현원(牛峴院)이 있었는데 우현원의 원(院)자를 따서 이원리가 되었다. 현리(縣里)라 함은 신라초에는 소리산현(所利山縣) 이었고 경덕왕 이후부터 고려 때 까지는 이산현(利山縣) 이었으며 바로 이 마을이 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현리라 불러왔다.

현리는 대밭말, 선말, 장터로 구분 되는데 옛장이 있던 곳이므로 구장터라고 부른다. 대밭말 뒤쪽 성재산 남쪽기슭에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선생의 문집 판목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있는데 1986년에 자손들이 그 판각을 모두 경기도로 옮겨서 빈 집만 남아있다.


대밭말과 장터 사이에 창주서원지가 있는데 서원은 훼철되고 묘정비만 남아 있다. 묘정비의 비문이 마모되어 판독이 어렵다. 1998년 안남면 도농리에 조헌선생의 표충사를 다시 짓고 신도비에 비각을 세울 때 이 묘정비에도 비각을 세우고 주변에 잔디밭을 조성하였다.


선말은 선바위가 있는 마을이다. 다리골 입구 냇가에 서 있는 이 바위는 온 주민이 신성시하는 바위이다. 주변에 콘크리트로 치장을 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역말은 역리라고도 불렀는데 이곳에 토파역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현남(縣南)이라 불리기도 한다.


두암은 말바우란 옛말을 한자화 할 때 말두(斗)자와 바위 암(岩)자를 써서 두암이라 하였는데 사실은 이곳에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 선생의 별장인 마암계당(馬巖溪堂)이 있어 마암을 ‘말바우’라 부르게 되었는데 한자화 할 때 말 마(馬)가 아닌 말두(斗)자로 쓰게 되어 두암리가 되었다. 두암리에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120호로 지정 받은 삼층석탑이 있다. 영동군과 경계지점인 월이산에 봉수지가 있어 옛날 영동군 용산면에 위치한 박달라산에서 받아 군북면 환산의 봉수대로의 통신을 담당하였다. 현리소류지가 있다.



현리마을의 자랑비의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마을은 동북쪽의 맑은 금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동쪽에는 명산 월이산의 정기를 받아 풍수학설로 왕조혈이라는 터전에 따뜻하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에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현리는 지금으로 부터 약 500여년전에 자리하였으며 1914년에 이내면에 속하였다가 1929년 군면페지 분합때 이남면과 이내면을 통합하여 이원면이라 하고 면소재지가 되여 행정지의 중심지였으며 옛부터 현리는 유규한 역사와 옛조상들의 얼과 지혜가 담겨져 있는 곳으로 조상님들의 슬기로운 발자취가 현재에도 뚜렷이 남아 담겨져 있는 곳으로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던 옛날 한양과 통래를 잇는 중간지점의 주요지로서 행정과 교통의 편리를 위하여 많은 관리들과 인마의 왕래시 숙뱍편의와 관물 물자수송의 편의를 위한 토파역 통신수단인 월이산의 봉화대터 월사 이정구선생의 문집판목을 보관한 장판각 창주서원자리의 묘정비 국토방위를 위한 토성지 유래미상의 선암등 역사의 흔적이 뚜렷하며 신라 경덕왕때부터 고려때까지 이산현의 소재지였기에 현리라 명명하였다. 우리 마을음 수십년전부터 전주민이 복숭아를 집단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는 복지마을을 이룩하였다.상기와 같은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이 이어지기에 후손들의 이름으로 자랑비를 세웁니다. 1995년 8월 이원면 현리주민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