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앙성면 능암리 조웅충신문(仰城面 陵岩里 趙熊忠臣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앙성면 능암리 조웅충신문(仰城面 陵岩里 趙熊忠臣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12. 17:15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기(白旗). 개국공신 조인옥(趙仁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조일(趙逸)이다.

조웅의 충신문은 잘 관리되고 있다.충신문의 정려에는 충신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행선략장군선전관조웅지문(忠臣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行宣略將軍宣傳官趙熊之門)라고 적힌 정려문이 있다.


충주 출신의 조웅은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나누어 의병을 이끌고 한성으로 가는 길목인 충주 앙성면 태자우(현 능암리 대평촌)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맞아 격전을 벌여 물리쳤다.

이 사실을 충청도체찰사가 행재소의 임금에게 알려 충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임하지 않았다. 조웅은 깃발을 모두 흰 것으로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백기장군이라고 하였다. 또한 8도의 의병 중에 “호서 백기장군과 영남의 홍의장군(곽재우)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용맹하였다. 1592년 8월 왜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후 전열을 가다듬고 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히게 되었다. 왜군이 항복을 권했으나 저항하다가 1592년 8월 4일 사지가 찢겨지는 고통을 겪으며 순절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에 있다.
사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1618년(광해군 11)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1690년(숙종 16) 정려가 건립되었다.


[탄금대에 자리하고 있는 조웅기적비]




조웅은 뛰어난 무예로 1591년(선조 24)에 조헌(趙憲)에 의해 국왕에게 추천되어 선전관으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 신립이 충주 달천 전투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에 조웅은 여러 지방에 격문을 띄워 5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충주의 태자산 아래에 주둔하여 서울로 북상하는 왜적의 후속 부대를 물리쳤다. 조웅이 기치를 모두 흰색으로 하여 군호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백기장군(白旗將軍)이라 하였다. 벌떼같이 일어났던 팔도 의병 중 호서의 백기장군과 영남의 홍의장군 곽재우가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조웅은 공으로 충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사령장을 받지도 못한 채 중과부적으로 왜적과의 싸움에서 끝내 죽음을 당하였다. 1605년(선조 38) 4월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1618년(광해군 11)에는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조웅에게는 부인 나주최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 조희성과 조희영이 있었다. 숙종 연간에 정려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허물어졌던 것을 1980년 11월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에 종손이 보관하였고 있던 정려의 현판을 걸고 복원하였다. 충주 탄금대에는 후손들에 의해 백기장군 조웅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능암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능동()과 죽암리()에서 ‘능()’자와 ‘암()’자를 따 ‘능암()’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복성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과 죽암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능암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가 되었다.

능암리의 남동쪽에는 무쇠봉[371m]과 남쪽에는 국사봉, 북쪽에는 새바지산 등이 높이 솟아 있다. 마을 사이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앙성천이 유역에 평야를 형성하면서 남한강에 흘러들고 있다.

앙성면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3월 현재 면적은 8.73㎢이며, 총 188세대에 453명(남자 220, 여자 233)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1.16㎢로 밭 0.42㎢, 논 0.74㎢, 과수원 0.0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여 벼·고추·콩 등의 작물과 사과·복숭아 등의 과수를 생산하고 있다.

탄산 온천인 능암온천이 있는데, 매년 9월에 앙성탄산온천휴양축제가 열린다. 또한 앙성농협에서 생산하는 품질을 보증하는 참한우 판매 시설이 있어 온천과 한우의 맛을 즐길수 있는 좋은 관광지이다.

주요 기업체로는태흥레미콘(주)과 태흥아스콘(주)이 있다. 최근에는 질 좋은 휘수연과 텅스텐을 채광하는 광산이 들어섰다. 앙성면 능암리 능동 산신제, 수살고사 등이 행해지고, 종교 시설로는 성주사, 능암교회, 능암순복음교회 등이 있다. 예로부터 목계와 서울을 잇는 국도 38호선의 4차선 도로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능암리[陵岩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