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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면 문주리 검암재(大召院面 文周里 劒巖齋)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면 문주리 검암재(大召院面 文周里 劒巖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8. 06:40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 팔봉서원뒤에 자리하고 있는 전주유씨의 재실인 검암재(劒巖齋)입니다.


충주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3번 도로를 이용하다가 살미면 세성리에 못미쳐 자연가든 앞에서 우회전하여 고개를 넘으면 문강사거리가 나온다. 다시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수안보면 토계리와 대소원면 문주리를 구획하는 팔봉교가 나온다. 팔봉교를 건너면 바로 앞 마을의 뒷산에 위치한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을회관을 끼고 돌면 팔봉사원이 나온다. 그 뒤로 전주유씨 유정린(柳廷隣)의 재실인 검암재(劍巖齋)가 있다.

문주리 팔봉 야철지는 검암재에서 약 10m 정도 떨어진 왼쪽의 주택 뒷편 밭에 위치한다.




전주유씨는 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 세거 성씨이다.

전주유씨는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유습(柳濕)이 고려 말에 완산백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전주(옛 이름은 완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주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9명, 재상 1명, 공신 2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0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전주유씨의 대표적 인물은 강원감사를 지낸 유항(柳恒)이다.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유항과 유영길의 신도비입니다]



이조참판을 역임한 유영길(柳永吉)이 광해군 때 이이첨 등 대북 세력을 피하여 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로 낙향하면서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강 상류에 위치해 물길이 편리한 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로 왔으나, 당시 목계가 상인들로 번잡한 포구였으므로 후손을 위하여 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현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를 거쳐 다시 산수가 좋은 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로 옮겨 정착하게 되었다.



검암재를 바라보며 좌측으로 검암재 건립문을 새간 건립비가 있습니다.

건립비에는 검암재를 건립시 공훈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물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검암재(劒巖齋)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건립시기는 1999년 7월이다.

근래에 지은 검암재는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으며 팔봉유씨들의 화합과 조상숭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