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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동 조선식산은행충주지점(城內洞 朝鮮殖産銀行忠州支店)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성내동 조선식산은행충주지점(城內洞 朝鮮殖産銀行忠州支店)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1. 11:52

 

 

충주시 성내동 나의 기억속에는 한일은행의 자리로 기억이 된다.일제강점기때 조선식산은행건물이다.이 곳이 문화재로 지정이 되니 안되니 하는 이야기를 메스컴을 통해 들었다. 시간내여 한번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나 보다. 온전한 건물을 보고 싶었지만 철거를 하다가 지금은 중단된 상태이다.충주시는 지난해 11월 28일 충주식산은행 건물의 복원과 철거를 놓고 주민공청회를 열었지만 찬성과 반대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로 결국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사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을 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6일 문화재청은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 의원 및 전문 의원들이 현장을 찾아 실사를 가졌다.

당시 시에서는 1월 말 경 문화재청의 심의위원회를 열어 2월 중으로 등록문화재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을 전망했다.

그러나 1월 말에 예정된 문화재청 심의위원회 충주식산은행의 이전 당시 정확한 위치 등 자료보완이 필요해 충주시에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이에 충주시에서는 최근 문화재청이 요구한 추가 자료를 전달했다. 5-6월경에 문화재 지정유무가 판단된다고 한다.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지난 2015년 11월 충주시에서 은행 터 830㎡를 7억원에 매입해 지상 1층 462㎡를 리모델링해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그러나 건축·구조 용역조사를 통해 철거 과정에서 건물의 심각한 훼손과 구조 안정상 문제점이 발생돼 사업을 중단하고 주민 의견을 청취한 결과 건축·역사학적 가치와 일제 식민수탈기관이라는 부분에서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왔다.

 

 

 

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이다.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없었다. 이에 정부는 1906년 3월 「농공은행조례(農工銀行條例)」를 공포하여 농공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지방 산업의 발전과 금융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각 관찰도(觀察道) 단위를 영업 구역으로 하는 농공은행을 설립하였다.


1906년 3월 정부에서 농공은행 조례를 발표하자 이에 의거, 그 해 9월 자본금 10만 원으로 충주농공은행을 설립하였다. 그 후 경제와 교통 관계상 한성·공주·충주의 3개 은행이 병합하여 1907년 6월 주식회사 한호농공은행 충주지점이 되었다. 당시 산업상태가 유치하고 농공자금의 용도가 미미하여 업무가 축소되자 1908년 9월에 한호농공은행 충주출장소로 격하되었다.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반적인 경제 상황은 진보화의 경향을 띄게 된다. 동시에 일본인이 이주하여 기업을 설립하자 구매력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1912년 8월 영업소의 건물을 신축하게 되고, 1914년 다시 지점으로 복구되었다. 농공은행은 1918년 6월 「조선식산은행령(朝鮮殖産銀行令)」의 공포로, 그 해 10월 조선식산은행에 합병되었다가 8·15광복 후 1954년 현재의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발전되었다.

예금 이자는 정기예금이 6푼5리, 당좌예금이 1전1리, 소구(小口)예금이 1전6리를 예금주에게 주었다. 대출 이자는 부동산 담보 대부가 4전2리 이하, 동산담보 대부가 4전2리 이하, 할인 수형(手形)이 4전 이하의 이율을 은행이 받았다.


농공자금과 상업자금 융자 및 예금업무를 수행하였다.


1914년 현재 총 예금액이 5071만 1930원이고, 총 대출액이 1억 2823만 3335원이었다. 대출금 중에서 농공자금이 5402만 8685원, 상업자금이 7420만 4650원을 차지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의 금융 진출, 특히 충주의 금융 진출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의 산업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 중 하나이다. 1918년 10월에 대한제국 말기에 설립된 한성농공은행 등 농공은행 6개를 합병해 설립되었으며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이 되었다.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실시된 산미증식계획에서 자금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중일전쟁 이후로는 약 8년 동안의 전시 체제 속에서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을 통해 조선의 자금을 흡수하여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이를 공금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한국식산은행으로 개칭되었고, 한국식산은행은 1954년에 한국산업은행을 발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