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도안면 광덕리 효자김창익정려문(道安面 光德里 孝子金昌翼旌閭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도안면 광덕리 효자김창익정려문(道安面 光德里 孝子金昌翼旌閭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16. 06:17



도안에서 음성방면으로 4차선 국도를 따라가다가 물레방아휴게소 직전 사거리에서 도안농공단지쪽으로 우회전하여 길을 따라가다 보면 농공단지를 지나 처음 만나는 동네가 광덕2리이다.광덕2리 마을회관을 끼고 좌회전하여 길을 가다보면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김창익 효자각은 이 느티나무 옆에 있다.법정리동 이름으로는 광덕리 2구에 속한다.모산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이다.



김창익(金昌翼)효자각은 이 곳에서 낙향하여 살던 김창익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머리에 종기가 생겨 위급하게 되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어머니를 호흡할수 있도록 돕고 간호하여 병환을 낫게 하였다.

그러나 또 다시 병이 재발하여 위태롭게 되자 그는 산토끼의 회를 먹여야만 날수있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다른 형제들과 여러곳으로 산토끼를 구하러 다녔으나 구하지 못하고 안타까워 하였다.



이 때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였는지 장독대 근처에 산토끼 한마리가 나타나 도망을 가지 않고 있기에 이를 잡아 어머니께 드리니 병이 완쾌되였다고 한다.그의 집안과 이 일대 선비들은 이러한 그의 효성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여러차례 충청감사와 청안현감에게 그의 효성사실에 대한 글을 올려 1882(고종19년)에 정려가 내려졌고 그 후 1900년(대한제국 4년)에 효자비와 효자각을 세웠다.




정려현판에는 효자경주김공창익지려(孝子慶州金公昌翼之閭)라고 써져 있으며 효자각을 바라보며 좌우측으로 신,구효자비가 1기씩 세워져있다.

철종8년(1857년)에는 김국주등이 충청감사에게김창익의 효행을 알렸고 철종13년(1862년)에는 청안현감에게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김창익의 효행사실이 대대로 전해지며 지금도 이 곳을 효자마을이라고 부른다.

김창익효자각 옆에는 김지전의 공덕비와 효자마을 유래비 그리고 마을향약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김칭익(金昌翼,1818-1892)은 1818년인 순조 18년에 태여나 1892년인 고종29년에 죽었는데 그의 자는홍백(弘伯)이고 부친은 영빈(泳彬)이다.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그는 어머니 머리에 종기가 나자 직접 자신의 입으로 어머니의 호흡을 도와 간호하려 낳게하였다.

그 후에 다시 노모가 이질이 걸려 고생하고 있을때 산토끼의 회를 먹어야 낳을수 있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산토끼를 여러곳으로 찾아다녔으나 구하지 못하였다. 이 때 그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집안에 장독대 옆에서 산토끼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마치 나를 어서 잡으세요 하는 듯 가만히 있으므로 이에 산토끼를 잡아 회를 떠서 모친에게 먹여드리니 모친의 병이 정말 씻은듯이 낳았다고 한다.


정부는 1882년(고종19)에 이러한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효자정려를 하사하였다.

그의 부인은 경주이씨 이집원(이집원)의 따님이다.그의 묘소는 괴산군 도안면 광덕리2구 모산마을 서쪽 건너편 언덕 경주김씨선영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