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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대성리 청학정(靑山面 大城里 靑鶴亭)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대성리 청학정(靑山面 大城里 靑鶴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5. 2. 10:04



청산면(靑山面)은 원래 신라초에 굴산현이었는데, 경덕왕 16년(757년)에 기산현이라 고치고, 삼년산군(현재 보은) 영역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청산현(靑山縣)으로 고치고 경상도 상주목의 직속으로 하였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면서 충청도의 10현 중의 하나인 청산현이 되고, 현감으로 종 6품과 향교에서 가르치는 훈도로 종9품이 각각 배치되었다.그러나 그 다음해인 태종 14년(1414년)에 황간현과 통폐합되어 황청현이라 고친 후 청산현감을 두고 상주의 주성부곡(보은 내북면)을 청산에 부속시켰다.1739년에 발행한 여지도서에는 청산현에 현내면, 북면, 동면, 남면, 서면, 주성면 등 6개면이 있었으며 현 청산면 관내인 북면에는 장연동리, 만월리, 대사전리, 예곡리 등이 있다.


그리고 청산현의 소재지인 현내면은 백운동리, 저전리, 하동리, 장위리 등 4개리 478호에서 15세 이상 된 사람 2,209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에는 청산현(靑山縣)이 청산군(靑山郡)으로 잠시 승격되어 현내면을 군내면(郡內面)이라 고쳤고 평상, 교동, 백운, 상지전, 하지전, 하동, 천서, 자매, 학촌, 신평, 덕곡, 대사, 장위리의 13개리를 관할하였다. 이후 1914년 3월 1일 군면 통폐합에 따라 군내면과 북면 대부분, 동면 등 3개면을 합하여 청산면이라 고치고, 옥천군에 영속케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산면의 면적은 77.5㎢이며 군내에서 가장 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면의 동쪽은 경북 상주시 화동, 모서면에, 서는 청성면에, 남은 영동군에, 북은 보은군 마로면에 각각 닿는다.



대성리(大城里)는 청산현 북면 대사전리(大寺田里)에 속해 있던 마을이며, 후에 마을이름을 대성리(大城里)라 고쳐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이나 1891년 기록에는 다 같이 청산현 북면 대사전리라 하여 91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다. 2007년말 현재 81호 165명이 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옥천군에 소속시켰으며 청산현 북면 중 장연동리(長連洞里)를 청서면에 편입시키고 그 외의 마을은 청산면에 소속케 한 뒤 대사전리를 대성리라 고쳐 불렀다. 대성리라 한 것은 대사전리의 대(大)자와 성티(성촌리)의 성(城)자를 한자씩 빼내어 대성리라 하였다.


대사전리는 “한절밭”의 옛말을 한자로 쓰면서 “한”은 대(大)자로 절(마을입구에 있었던 절-기와파편 발견)은 사(寺)자로 밭은 전(田)으로 써서 대사전이라 하였으나 원 옛말의 뜻으로는 “한”은 크다는 말이며 “절“은 길다라는 말이며 ”밭“은 전이므로 ”크고 긴 밭“이란 뜻이다. 이곳 지형으로 보아 보청천가의 크고 사래가 긴 지대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큰절밭마을>큰절밭말>큰절밭>한절밭>한질밭)
성티(城峙)라 함은 “잿마”의 옛말을 한자로 쓴 것으로 추측된다.


대성리의 자연마을은 한절밭, 잿마, 월남(月南, 월내미) 등이 있으며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세거지로 한호팔경(閑湖八景)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1969년 3월 1일 개설하여 1995년 3월 1일 폐교된 대월초등학교 자리가 남아있으며 월남소류지와 1967년에는 축조된 대성소류지가 있다.



보청천을 바라보고 있는 청학정입니다. 예전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청학정 옆으로는 계산풍월(溪山風月)이란 글자가 있는 시비석(詩碑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학정( 靑鶴亭)은 원세중(元世重)이 예부터 자주 소요했던 정자 입니다.대성리는 원주원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