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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 용정리 태화명4년마애불입상(草坪面 龍亭里 太和四年銘磨崖佛立像) 본문
진천읍에서 동쪽으로 진천이 자랑하는 넓은 덕문이들을 지나 10여리 가면 덕산 쪽에서 흘러오는 미호천의 한 지류를 만나게 된다.
이 개울을 건너면 바로 고개에 접어들게 된다.
넓은 찻길을 가되 양쪽에 산이 와 닿아있어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짐짓 방향이 남북으로 바뀌는 부처당 고개 마루턱, 왼쪽 벼랑에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알 수 없는 불상, 그리고 몇 글자의 음각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도로이므로 차를 정차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보호각이 없다면 누구나 다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진천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목인 초평면 용정리 ‘부처당고개[속칭 부창이고개]’의 초입 북쪽 암벽에 서남향으로 서 있다. 전체 높이 170㎝, 불상 높이 119㎝, 머리 21㎝, 가슴넓이 28㎝이다. 직벽의 바위면을 쪼아 얕은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는데, 재질이 무른 바위에 조성하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불신이 심하게 손상되어 세부적인 표현을 판명하기가 어렵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입니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산 7번지에 있는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에 조성되었으며,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국가 소유로 진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9세기 이후 지역에서 나타나는 거칠면서 순박한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진천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진천 지역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천여 년을 모진 비바람 속에 버티어 왔음인가, 고개를 지키는 기운이 다했음인가 형체는 다만 아랫부분에 옷주름을 볼 수 있을 뿐 심한 마모 속에 그 모습을 숨기려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옆에 새겨진 몇 글자의 한자가 뚜렷하니 단국 대학 정영호 박사 팀에 의해 그 연대가 밝혀진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불상은 연화좌 위에 서 있으며 상의 높이는 170㎝이다.
이 마애불은 원래는 유려한 조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머리 부분에 큰 손상을 입어서 상호를 알아 볼 수 없고, 재질이 약한 바위에 조성했기 때문에 마모가 심하여 법의와 수인의 형태를 전혀 알아 볼 수 없다.
특히 불두 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어 상호를 판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각이 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고, 눈초리가 삐죽하게 올라가 마치 순박한 산골 아저씨 같은 인상이며, 불두의 육계(肉髻)는 깨져 있다. 불상은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수인의 형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다.
법의 또한 마멸이 심해 표현 기법을 알 수 없다. 선으로만 조각된 불상은 거친 목판화를 보는 것처럼 투박하고 깊게 음각되어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이다. U자형 옷 주름은 정제된 맛이 없고, 무릎에서 내려오는 내의는 수직으로 주름져 있다. 연화대좌 위에 오른쪽 발바닥을 위로 하여 왼편 넓적다리 위에 얹은 자세를 하고 있다.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불상의 좌우측 상단에 음각으로 새긴 명문이 있다는 것이다. 마애불의 왼편으로는 후대에 새긴 ‘미륵불(弥勒佛)’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있으며, 반대편에는 ‘태화 4년 경술 삼월 일(太和四年庚戌三月日)’이라는 명문이 확인된다. 이 명문은 바위의 탈락이 심해 전문의 해석은 어렵지만, 절대 편년을 가지고 있어 조성 시기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마애불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불상의 좌우측 상단에 음각으로 새긴 명문이 있다는 점인데, 이 명문은 바위의 탈락이 심해 전문의 해석은 어렵지만 우측상단에 불상의 존명을 알려주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구절과 좌측상단에 불상 조성시기를 알려주는 '태화4년경술3월일(太和四年庚戌三月日)'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태화 4년'은 연호로 네 번 등장하는 데 그 중 간지가 '경술'인 해는 수나라 명제 4년(서기 230년) 경술이 있으나, 이해는 너무 오랜 시기이고 신라 흥덕왕 5년(서기 83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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