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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동부리 괴산군수이휘응선정비(槐山邑 東部里 槐山郡守李徽應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괴산읍 동부리 괴산군수이휘응선정비(槐山邑 東部里 槐山郡守李徽應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6. 19. 16:41



행군수이후휘응영세불망비(行郡守李侯徽應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다.

대석은 없고 비석의 갓은 파손되였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광서8년 임오년 7월(光緖8年 壬午年 7月)이다.

광서8년은 고종19년 1882년이다.  이휘응()은  본관은 전주. 선조()의 9남 경창군의 9대손이다.괴산군수후 의성현령과 면천군수등을 지냈다.


이 휘응의 불망비는 수진리에 있던 비석을 이곳 동헌으로 옮긴것이다.



승정원일기 2851책 (탈초본 132책) 고종 15년 6월 27일 을사 14/30 기사 1878년  光緖(淸/德宗) 4년의 승정원일기를 국역한것을 보면

1878년에 괴산군수에 그리고 1880년에 통천군수로 가게된다.선정비는 그 후 1882년에 건립되였다.


○ 정사(政事)가 있었다. 이비(吏批)에 행 판서 박제인(朴齊寅)은 나오고, 참판 민영목(閔泳穆)은 아직 숙배하지 않았고, 참의 김병익(金炳翊)은 나오고, 좌부승지 박정양(朴定陽)은 나왔다.
민영목을 이조 참판으로, 조병우(趙秉友)를 돈녕부 도정으로, 정기회(鄭基會)를 경연 지사로, 황익수(黃益秀)를 수찬으로, 조봉하(趙鳳夏)를 춘추관 지사로, 남일우(南一祐)를 동지춘추관사로, 조인희(趙寅熙)를 성균관 동지사로, 이동우(李東友)를 감찰로, 서하순(徐夏淳)을 인의(引儀)로, 이준하(李遵夏)를 사포서 직장으로, 이원상(李源祥)을 사옹원 봉사로, 김홍집(金弘集)을 남학 교수(南學敎授)로, 윤영태(尹榮兌)를 겸인의로, 이휘응(李徽應)을 괴산 군수(槐山郡守)로, 이병훈(李秉薰)을 용담 현령(龍潭縣令)으로, 홍재정(洪在鼎)을 무안 현감(務安縣監)으로 삼았다.
고(故) 부사 김창운(金昌運)을 병조 참판과 그에 따른 예겸(例兼)에 추증하고, 고 영장 김취대(金就大)를 좌승지에 추증하였는데, 이상은 동지(同知) 김영기(金永琦)의 양대(兩代)이다. 고 학생(學生) 백여진(白畬鎭)을 호조 참판과 그에 따른 예겸에 추증하였는데, 이는 동지 백영수(白榮洙)의 아비이다.



괴산동헌을 찾던날 괴산군수를 지낸 손만웅과 그 후의 긴세월이 지난후의 이휘응의 비석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기인 세월의 거리만큼 조금은 서먹하겠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아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