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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흥5년이 새겨진 광배(建興五年이 새겨진 光背) 본문

박물관 구경하기/청주박물관(淸州博物館)

건흥5년이 새겨진 광배(建興五年이 새겨진 光背)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7. 10. 14:04

청주박물관에 있는 건흥5년이 새겨진 광배는 노은면 연하리에 소재한 보련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보련사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산26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련사는 창건에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지만, 『新增東國輿地勝覽』과 『世宗實錄』의 기록을 통해 조선초기경까지 존속되었고, 『梵宇攷』에서 ‘천룡산에 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18세기 이전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련사지는 보련산의 남서쪽 계곡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연하2리에서 보련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통해 북동쪽으로 약 2㎞ 올라가면 확인된다. 『문화유적분포지도』의 지형도에서는 다른 계곡을 사지로 표시하고 있으나  연하리 보련사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사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보련사는 융성했을 때 승려가 많아서 쌀뜨물이 한강까지 흘러갔다고 하고, 보련산에는 ‘도둑절터’와 ‘붉은절터’, ‘연하동 부도골 절터’라고 불리는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 연하동 부도골 절터에서는 1956년에 승탑 하대석 부근에서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한편 보련사지에서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建興五年’명 금동불 광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사지에는 석축이 현존하고, 다량의 기와편이 산재한다고 한다



추정사역은 1단의 평탄지와 전면 석축이 남아 있다.평탄지 배면에는 암반이 형성되어 있고, 평탄지에는 가건물 1동과 최근에 조성한 석조여래좌상, 마애불이 있다. 또한 남쪽에는 철제 계단이 있고, 평탄지의 북쪽에는 근대에 조성한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주지 김도봉스님을 비롯한 시주자 명단이 적혀 있다. 이곳은 최근까지 불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고, 연하리에 있는 보련사 주지스님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사지는 1단의 평탄지와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탄지의 크기는 17.6×10.7m이고, 전면 석축은 3단으로 축조되어 있다. 전면 석축은 남서향(S-40°-W)을 하고있고, 1단 석축은 전체 길이 17.6m이고, 높이 6.4m이다. 2단 석축은 잔존 길이 7.4m, 높이 3.4m이고, 3단석축은 잔존 길이 10m, 높이 1.5m이다.

평탄지와 석축 일대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확인된다.유물은 선문, 어골문, 어골변형문, 집선문, 중호문, 격자문 와편과 청자편, 분청자편이 있다.

사지에서는 1915년에 ‘建興五年’명 금동불 광배가,1967년에 금동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광배와 금동불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배는 높이 12㎝로 주형광배이고, 일광삼존불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별도로 주조된 본존불은 결실되어 있고, 광배와 함께 주조된 좌우 협시보살상만이 남아있다. 두광에는 중앙에 8엽 연화문과 연화문 주위로 3조의 동심원이 표현되었고, 두광의 아래로는 신광이 이어져 있다. 신광 안에는 3조선이 있고, 신광 위쪽에는 본존불을 고정시키기 위한 방형의 홈이 파여져 있다. 두광 위쪽에는 연화대좌 위에 상반신만 드러내고 앉아 있는 3구의 화불이 있다. 화불은 보주형 두광을 가지고 있고, 착의법은 통견이다. 또한 광배의 상단부는 화염문이 표현되어 있다. 협시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있고,천의는 신체 전면에서 ‘X’자로 교차되어 있다. 수인은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고, 연화대좌가 있다. 광배 뒤에는 “建興五年歲在丙辰 佛弟子淸信女 上部兒庵造釋迦像~一切衆生同此願”이라고 적혀 있다.‘건흥’은 고구려의 연호로 추정되며, ‘병진’은 596년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고구려작일 가능성은 높지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보련사지는 보련산 산허리에 있고 굴참나무,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활엽수 군락 내에 있다. 이곳은 수령이 15~50년까지 다양하게 분포하는 임야로 자연환경보전림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지는 마을에 있는 보련사에서 산신각이라 부르고있다. 사지 내 평탄지는 나지로 남아있고 가건물과 불상이 세워져 있으며 평탄지 주변은 정비되어 있다.
평탄지 전면에는 2~3단으로 들여쌓은 석축이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석축은 사지가 기도처로 이용되면서 지속해서 정비를 하여 입목에 의한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석축 향 우측에는 토사유출로 석축이 유실되어 임시방편으로 비닐천막으로 덮어 놓았다.

보련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을 통해사명과 연혁이 확인된다. 따라서 사찰의 운영시기는 문헌기록과 유물의 양상, 불상의 제작시기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로 추정된다. 이곳은 산사태발생위험도가 적은 지역이어서 환경에 의한 영향은 크지않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석축을 높게 쌓아 평탄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토사유출이나 토압증가로 발생하는 피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진입시설을 위해 보축한 부분은 새롭게 평탄지를 조성한 곳으로 지반이 약할 우려가 있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