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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淸州博物館 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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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淸州博物館 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7. 31. 17:55






통일신라시대의 비상()이다.

보물 제368호. 1960년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다른 두 비상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작은 비상으로 네 면에 모두 조각이 되어 있다. 그러나 반가사유상이 표현된 앞면 위주이다.

이 비상은 아래 대좌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윗부분은 용이 서로 얽혀져 옥개()를 형성하였다. 대체로 비()의 전·후면 모양은 T자형이고, 측면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모서리에는 둥근 기둥 모양을 새겨서 각 면이 마치 감실() 같은 형태를 이룬다.




전면 중앙에는 반가상 1구가 부조되었다. 이 불상은 방형(: 네모반듯한 모습)의 대좌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좌()를 결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턱에 대어 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하였다. 천의()는 두 팔에 걸쳐서 길게 대좌에 이르고 있다.

두광은 내부를 다시 원형으로 구획한 뒤 연주문()을 두르고 안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천개()가 있어 보주()와 영락(: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으로 장식되었다. 보살상 양옆으로 장엄한 수식(: 드리개)이 늘어져 있다. 보살이 앉아 있는 방형의 대좌 밑에는 내려뜨린 다리를 받치는 연화족좌()의 연판이 높은 부조[]로 표현되었다.

앞면 밑부분은 네모난 면을 만들어 중앙에는 둥근 향로를 놓고 좌우에 꿇어앉은 인물상을 1구씩 배치하였다. 손에 든 지물()과 머리 모양으로 미루어 오른쪽[]은 공양자상()으로 보이고 왼쪽[]은 승려로 생각된다.

비상의 좌우 측면은 표현이 동일하다. 위에는 보살상 1구가 보주를 들고 연화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래에 꿇어앉은 공양자상을 하나씩 새겼다. 이 두 보살상은 모두 앞면을 향한 측면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앞의 반가상을 주존()으로 한 삼존 형식()을 의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뒷면은 앞면과 달리 약간 곡면을 이루었다. 조각은 매우 간단하게 보탑() 하나를 가득히 새겨놓았다. 탑은 이중 기단 위에 타원형의 탑신()이 마련되고 다시 그 위에 평판이 놓였으며, 크고 작은 3주의 상륜()이 꽂혀 있다. 사유형의 반가보살좌상은 흔히 미륵보살로 해석되며, 보탑은 미륵보살의 상징이다. 이로써 앞면과 뒷면의 표현이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비상의 제작은 중국의 동·서위(西)에서 비롯하여 북제()·북주() 및 수()·당()에 걸쳐 유행하던 것이다. 이 비암사 비상도 이러한 계열의 영향을 받은 한국적인 표현으로 생각된다.

이 비상이 발견된 세종특별자치시 일대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비상들이 더 발견되었다. 모두 7기로, 이 가운데 비암사에서 발견된 다른 두 개의 비상에서 명문이 발견되었다. 명문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 유민들의 발원으로 673년부터 689년에 걸쳐 조성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보다는 오히려 옛 백제 땅의 지방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대부분의 상들이 아미타여래임에 비하여 이 상은 삼국시대에 유행된 미륵 신앙을 배경으로 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새겨 있다. 양식면에서는 비암사의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106호)과 일치하고 있다.

이 비상은 673년경을 전후하여 조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세종특별자치시의 다른 비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지방 양식과 당시의 신앙 내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