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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면 화성리 효자문(道安面 花城里 孝子門) 본문
곡산연문쌍효각(谷山延門雙孝閣) : 효자 연주운(延周運)과 그의 손자인 효자 연면회(延冕會)의 정려를 합설한 쌍효각이다.
화성3리 ‘상작’ 입구 174번지에 있다. 연주운의 정려는 고종 24년(1887)에 내렸고, 연면회의 정려는 고종 29년(1892)에 내렸다.
이때 두 사람의 정려를 함께 설치해 쌍효각이 되었다. 쌍효각 건물은 정면 1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현판에는 ‘효자문(孝子門)’이라고 되었다. 효자각 안에는 위에 ‘효자성균생원연주운지려상지십삼년정해사월일명정(孝子成均生員延周運之閭上之十三年丁亥四月日命旌)’, 그 아래에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연면회지려상지십팔년임진오월일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延冕會之閭上之十八年壬辰五月日命旌)’이라는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시강원 좌빈객 민영상(閔泳商)이 쓴 ‘곡산연씨효자정려기(谷山延氏孝子旌閭記)’가 걸려 있다.
연주운(延周運)은 본관이 곡산으로, 호는 퇴수정(退修亭)이요 자는 성구(性久)이다. 그는 부친의 병이 위독하자 부친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다리를 베어 피를 먹여 목숨을 연명시킨 인물이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섬기면서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10리나 떨어진 부친의 묘소를 매일 돌아봤다고 한다. 아버지의 제삿날에는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 했으며, 고기 없이 반찬을 먹고, 슬퍼하는 것이 상을 당했을 때와 같았다고 한다.
연면회는 어려서부터 효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학문에도 뛰어난 면이 있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녹담초(鹿膽草)가 먹고 싶다는 말에 몇 날 며칠 동안 녹담초를 찾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강원도 영월 서쪽 강변으로 가보라는 말에 깨어나 곧장 달려가 보니 정말로 녹담초가 있었다. 이것을 가져와 어머니께 정성껏 달여 드렸더니 보이지 않던 눈이 보였다. 또 아버지가 병환이 들어 고생하실 때에는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와 드시게 하였다
새로지은 마을회관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사람들의 자긍심이 높다.
곡산연씨라고 불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안연씨라고도 부를 정도로 도안에는 곡산연씨들이 대성이다.
기와와 더불어 풍판등 단청도 다시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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