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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이원리 윤정훈송덕비(內北面 泥院里 尹鼎勳 頌德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내북면 이원리 윤정훈송덕비(內北面 泥院里 尹鼎勳 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9. 13. 13:58




내북면 이원리 석성국묘지옆에 자리하고 있는 의사 윤정훈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의사파평윤공정훈송덕비(義士坡平尹公鼎勳頌德碑)라고 음기되어 있으며 좌우 후면에는 윤정훈의 행적이 기술되어있다.


윤정훈 의시는 일명 용배라고도 한다.

보은군 내북면 서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천품이 관후하고 기개가 장하셨던 바 경술면 한일합방을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하려다가 복수책을 생각하고 암암리 동지를 찾아다니며 인재를 구해놓고 기회를 살피던 중 서기 1918년 무오12월 고종황제 국상에 서울로 올라가 손병희 선생을 만나 구국방략을 논의한바 명년삼월 인산시를 기해 국민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러 세계만방에 억울을 표명할것을 약정하고 귀향하여 동지규합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하여 동면 산성리에 이용기 산외면 봉계리에 구영조외속리면 구인리에 이창선 이준영 이인하 김용석 수한면 묘서리에 최용문 송덕비 안만순 제씨와 더불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1919년 3월1일 야반을 기해 리민을 인솔하고 난성리의 노고성 봉곡리에 갓모봉 속리산에 문장에 올라가 봉화를 신호로 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일경에 즉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결과 의사께서는 청주및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어 모진고문으로 거의 반신불수가 되다시피되어 1921년 4월에 가출옥 되었으나 옥중에서 얻은 벼으로 신음하시다가 서거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라 하겠는가 생각컨데 우리는 원래가 자유와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으로서 더욱 애국심이 투철하여 역사상 외침을 당할때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그리하여 그 불굴의 투혼은 능히 이 강토를 수호해온 이외에 동방에 있어서의 예의지국이라는 칭호까지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의거룩한 항일투쟁이야 말로 우리 겨레 고유의 혼을 잘 나타냈다고 볼수있지 않겠는가.그리하여 그 혼은 지난날 8.15의 빛나는 해방을 가져온 것이며 또 나아가서는 현재와 미래를 통해 민족사상의 등불이 되기에 족하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1977년 12월 13일 정부로 부터 표창장이 하달되었으며 이것은 너무도 당연지사라 아니할수 없다.본 애향동지회에서는 그 위적을 추모하고 충효 예의 사상을 고취하며 향토발전을 위하는 뜻에서 회원끼리의 힘을 모으고 각 기관 및 유지인사의 성원을 얻어 여기에 자그마한 돌을 깍아 세운다.

서기 1977년 기미3월 내북면애향동지회 세움 경주 김견구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