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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봉황리마애불상군-2 본문
산비탈 두 곳의 커다란 암벽에 시기를 약간 달리하여 부조(浮彫)로 조각되어 있는 9구의 불·보살상(佛·菩薩像)이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供養像)·반가상(半跏像)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供養像)·반가상(半跏像)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은 햇골산 중턱의 비탈 암면과 근접한 바위면 상·하부 두 곳에 조각되어 있는데, 상부의 마애불(본존불:전고 260.0㎝, 불신고 206.0㎝, 견폭 100.0㎝, 슬폭 229.0㎝ / 화불:전고 36.0㎝)은 높이 3.5m, 폭 8.0m 크기의 바위면에 양각되어 있는 상으로 넓게 벌어진 무릎과 어깨로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를 하여 마치 환조(丸彫)와도 같은 부피감이 있어 보인다. 굵은 나발(螺髮)의 흔적이 역력한 머리는 육계의 구분이 뚜렷하고, 뺨에 살이 올라 팽만되어 보이는 얼굴은 각이 지고 부은 듯 눈꺼풀이 두툼해진 눈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긴장감이 느껴지는 등 삼국기의 고졸미가 엿보인다. 귀는 적당한 크기로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지 않는다. 손 모습은 오른손을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하여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지은 듯 하며, 통견의(通肩衣)로 여겨지는 법의는 암면이 깨어지고 마멸이 심하여 옷주름의 흐름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신체에 비하여 무릎이 유난히도 넓게 벌어진 발은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와는 달리 발을 대퇴부에 두지 않고 서로 맞댄 채 아래로 내려 유희좌(遊戱坐)의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바위면 끝까지 닿아 있는 둥근꼴의 머리광배(두광(頭光))에는 5구의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는데, 마치 입체 조각과도 같이 매우 도드라지게 조각하여 본존불과 함께 부피감이 돋보인다.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화불 또한 근엄한 표정에 오른발을 누이고 왼발을 비스듬히 세워 결가부좌가 아닌 교각상(橋脚像)을 하여 본존불과 유사한 점이 흥미롭다.
하부의 마애불은 다시 상·하단으로 나뉘어 모두 8구가 남아 있다. 이 중 상단의 상(불상:현고 123.0㎝, 견폭 62.5㎝ / 공양상:전고 66.5㎝)은 암반의 깨어진 상태로 보아 본래는 삼존상(三尊像)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좌측(향우(向右)) 암반이 크게 떨어져나가 지금은 불좌상 1구와 공양상 1구만 남아 있다. 불좌상은 상부 마애불상과 같이 앉은 모습에 손 모양과 법의의 착용 방법(착의법(着衣法)) 등에 있어 공통점을 보이며, 공양상은 불상 오른쪽에서 본존을 향해 오른 무릎은 꿇고 왼 무릎을 세운 채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어서 전개되는 하단(반가상:전고 135.5㎝, 불신고 115.5㎝, 견폭 39.0㎝, 슬폭 48.5㎝ / 보살상:불신고 47.0㎝∼90.5㎝)의 상은 반가상을 중심으로 좌측(향우(向右))에 1구, 우측(향좌(向左))에 4구 등 다섯 구의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반가상 우측면에 자리한 4구의 보살상은 앞·뒤로 겹치게 배열하여 원근(遠近)이 구사된 흔치 않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하단 6구의 상 아래로 연화대좌(蓮花臺座)를 나타내어 마치 연못에 피어난 연꽃 위에 있는 듯 생동감이 엿보여 특징적이다.
이 불상군은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배경과 함께, 역사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조성되었다고 여겨져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불상으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하부의 마애불은 다시 상·하단으로 나뉘어 모두 8구가 남아 있다. 이 중 상단의 상(불상:현고 123.0㎝, 견폭 62.5㎝ / 공양상:전고 66.5㎝)은 암반의 깨어진 상태로 보아 본래는 삼존상(三尊像)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좌측(향우(向右)) 암반이 크게 떨어져나가 지금은 불좌상 1구와 공양상 1구만 남아 있다. 불좌상은 상부 마애불상과 같이 앉은 모습에 손 모양과 법의의 착용 방법(착의법(着衣法)) 등에 있어 공통점을 보이며, 공양상은 불상 오른쪽에서 본존을 향해 오른 무릎은 꿇고 왼 무릎을 세운 채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어서 전개되는 하단(반가상:전고 135.5㎝, 불신고 115.5㎝, 견폭 39.0㎝, 슬폭 48.5㎝ / 보살상:불신고 47.0㎝∼90.5㎝)의 상은 반가상을 중심으로 좌측(향우(向右))에 1구, 우측(향좌(向左))에 4구 등 다섯 구의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반가상 우측면에 자리한 4구의 보살상은 앞·뒤로 겹치게 배열하여 원근(遠近)이 구사된 흔치 않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하단 6구의 상 아래로 연화대좌(蓮花臺座)를 나타내어 마치 연못에 피어난 연꽃 위에 있는 듯 생동감이 엿보여 특징적이다.
이 불상군은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배경과 함께, 역사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조성되었다고 여겨져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불상으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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