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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면 노원리 신잡묘소(梨月面 老院里 申磼墓所) 본문
신잡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준(伯峻), 호는 독송(獨松).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이다.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첫째 동생은 신급이고, 둘째 동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결사항전하다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이며, 셋째 동생은 임진강 전투에서 추격해 오는 적을 막다 전사한 신갈(申硈)이다. 아들은 둘이 있었는데, 둘째아들 신경지(申景址)는 작은아버지인 신립을 도와 탄금대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였다.
신잡(申磼)[1541~1604]은 1592년(선조 25) 이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을 무렵 정철(鄭澈)이 명나라 사은사(謝恩使)로 가게 되자 이를 모함하는 자에 대해 왕에게 정철의 강직함을 충언하여 사은사로 보내게 하였다. 이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변사당상으로 활약하였으며, 서울에서 의주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1595년(선조 28) 관내의 철산군에서 죄수들의 탈옥 사건이 일어난 일로 파직되었으나 청렴결백하고 우국충정이 강하다는 평에 힘입어 4개월 후에 호조참판으로 기용된 뒤 1596년(선조 29) 특진관이 되었다.
1604년(선조 37) 개성유수가 되었을 무렵에 관료들이 권력을 이용하여 농민들을 괴롭히자 진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조정에 건의하여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농경지 등을 모두 돌려주게 하고 착취 행위를 막는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공덕을 칭송하였다. 또한 송도유수로 재직 시 늙은 부모를 둔 자식들과 그 부모들을 위한 수연 잔치를 제안하여 대동수친연(大同壽親宴)을 열었다.
1568년(선조 1) 이월면 내촌리 당골 처조부(妻祖父)의 상례에 왔다가 지방의 향학이 발전되지 못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다, 1608년(선조 41) 진천으로 낙향하여 지금의 이월면 노원리 서원마을에 서원을 건립한 뒤 이종학·김덕숭·이여·이부의 위패를 모시고 후진들에게 충효 교육을 하였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었으나, 도시 계획에 의해 1975년 이월면 노원리 노은영당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으로 봉해졌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충헌(忠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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