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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미산면영원부원군신도비(漣川郡嵋山面鈴原府院君神道碑)..경기도 본문
경기도 문화재 자료137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백학쪽에서 승의전를 가는 길목인 아미리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표지판도 잘되여 있고 나름대로 관리도 잘되고 있는것 같다
신도비는 전쟁의 포화속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 훼손되여 글자를 판독할수가 없다
이수에는 정교한 솜씨의 용이 세밀하게 조각되여있다
윤 호의 신도비는 조각 기법이 탁월하여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신도비는 건립 당시 비각이 있었던 것으로 현재 주변에는 4개의 주춧돌과 와편이 남아있다. 신도비의 비좌는 백색화강암으로 전후 9엽, 좌우 4엽씩의 복련문(伏蓮紋)이 있다. 비신의 전면(前面)에만 비문(임사홍의 글씨)이 있는데 6·25전쟁 때 입은 수많은 탄흔으로 인해 판독은 불가능하다. 이수는 검게 산화되어 있으나 운문(雲文)속에 입을 벌려 혀를 널름거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매서운 눈, 턱 밑의 수염과 발톱이 세 개인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비 아래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규모는 비좌가 높이 17㎝·너비 150㎝·두께 100㎝이고, 비신이 높이 196㎝·너비 95㎝·두께 23㎝이며, 이수가 높이 84㎝·너비 102㎝·두께 30㎝이다.
윤 호(1424~1496)는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숙보(叔保)이고 영천부원군 삼산(鈴川府院君 三山)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시에 합격하여 군기시주부·의금부도사·신창현감·밀양부사·양주목사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 성종이 그의 딸을 왕비로 삼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되자 국구(國舅)로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에 봉하여 졌다. 1488년 영돈녕부사에 이르고 이듬해 사복시제조를 겸하였다. 1495년(성종 25) 우의정이 되면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고 궤장을 하사받았으며, 다시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평소에 성품이 검소하고 교만함이 없었으며 외척으로서 세도는 추호도 찾을 수 없었다. 저서로는 아들 탕로(湯老)와 공저인 파천집『坡川集』이 있으며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이 남아 있다.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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