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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사인암 군수이경식각자(大崗面 舍人岩 郡守李敬植刻字)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대강면 사인암 군수이경식각자(大崗面 舍人岩 郡守李敬植刻字)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9. 30. 09:04



일제강점기인 대정4년 11월에 사인암을 다녀간 당시의 군수 이경식의 글씨이다.

각자는 군수이경식 대정4년 11월(郡守李敬植 大正4年 11月) 이라고 적혀있으며 옆에는 당시 대흥면장(大興面長)을 지낸 조동헌(趙東憲)의 이름도 각자되어 있다. 大正4年이면 서기 1915년이다



일제 강점기 단양군의 초대군수는 경훈(慶勳)이다. 그 뒤를 이어 2대 단양군수를 역임한 이경식(李敬植)188389일 조선 고종 20년 제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사립 일어학교를 1906년 조선 고종43년에 졸업하고 탁지부(度支部)에서 주사와 서기를 역임하였다. 그 후 1910년 조선 순종 4년에 한일합병(韓日合倂)이 되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소속의 군서기로 군무하다가 1913년에 단양군수가 되었던 인물이다. 이후로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괴산군수 충주군수 진천군수 옥천군수를 차례대로 17년간을 역임을 하였던 전형적인 관료(官僚)이다. 이경식(李敬植)은 유학에 밝았던 인물이다. 그는 성균관 후신으로 총독부는 1887년에 성균관을 개칭하여 총독부 지배하에 있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유교교육 기관인 경학원(經學院)의 사성을 지낸 유교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1932년에는 조선유교의 명리원 법정에 임명되어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에도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는 문장에도 타고난 소질이 있어 일본 천황(天皇)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찬양하는 한시(漢詩)를 지어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이 발발하자 조선의 청년들에게 징집(徵集)을 축하하는 한시도 지은 인물이며 조선임전부국단 발기인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친일행적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경식의 부인은 당시의 여성단체인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라는 황군을 돕고 천황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단체에 참석을 하였으니 부부간에도 친일하였던 인물이다. 애국금차회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열린 결성식에서 금비녀를 비롯한 장신구(裝身具)와 현금(現金)을 즉석에서 모아 국방헌금으로 헌납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차()는 비녀를 나타내는 비녀차 자()이다.  

그는 193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발탁이 되어 15년간이나 지낸 이경식은 광복시점까지 재직하였던 인물이다. 그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1912년에 한국병합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을 수여 받았다. 한국병합기념장은 19108월의 한일 병합 조약 체결과 한일 병합을 기념하기 위하여 1912년에 수여한 기장이다. 그는 이 외에도 일본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이경식의 군수(郡守)의 첫 부임은 단양군수(丹陽郡守)이다. 그가 단양군수로 재직 시 대정(大正) 411월 달에 사인암을 찾았다가 암벽에 각자(刻字)를 하여 놓았던 것이다. 대정 4년은 1915년이다. 이경식은 1913221일에 단양군수로 발령이 난 것으로 보인다. 이경식의 글을 보면 조선의 민중은 협동정신이 결여되어 일족 가족 일당 일파에게는 협력을 하지만 국가적 사업수행에 막대한 저해가 된다고 주장을 하면서 이를 개선하려고하면 예전의 사직(社稷) 혹은 문묘(文廟)의 터에 신사(神社)를 창립하여 모든 동민(洞民), 읍민(邑民), 군민(郡民)들이 참석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1941년에 그가 저술한 내용을 보면 전시하의 반도의 민정은 극히 평온하고 견실하게 생활이 안정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신념이 날로 그 부리가 견고해져서 국제정세가 긴박한 오늘날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은 황국신민이 된 감격에 목 놓아 통곡함은 오직 미나미지로(南次郞) 총독 각하의 치적 덕택입니다. 라고 그의 미천함을 들어낸다. 이경식(李敬植)2002년에 발행된 친일파(親日派) 708인 명단에 선정되었으며 그가 소유한 충북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의 과수원등 6필지가 국가귀속결정을 내려서 환수되었다. 그는 1945114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