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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관찰사남일우영세불망비(大崗面 觀察使南一祐永世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대강면 관찰사남일우영세불망비(大崗面 觀察使南一祐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0. 9. 05:10



남일우는 1837(헌종 3)∼?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의령(). 뒤에 남일우()로 개명. 자는 백경(). 남태순()의 손자이며, 나주목사 남병선()의 아들이다.

대강면 체육공원 공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남공일우영세불망비(觀察使南公一祐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다.


조선 고종대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후임관찰사인 박재관(朴齋寬)의 부임연도가 고종21년 甲申(1884년)이다.

따라서 비석의 건립일인 계미(癸未)년은 고종20년(1883년)이다.



남일우는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3년(고종 10) 성균관대사성,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79년에는 그해의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충주·연풍·부여·청안 등지의 관청의 부실한 재정을 일제히 정비하였고, 조세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충청우도에 산재한 주사읍진()의 수토군()과 수영()의 난후군()을 혁파하여 군사제도를 정비하기도 하였다.

그뒤 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886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 점차 훼절()되어가던 조선조의 기본법전인 『대전회통()』·『대명률()』·『무원록()』 등을 개간, 인출()함으로써 형정()에 공헌하였다. 그해에 공조판서에 올랐다.[南一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