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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 대가리 신상리·신익화 정려각 (赤城面 大加里 辛象履辛翊華 旌閭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적성면 대가리 신상리·신익화 정려각 (赤城面 大加里 辛象履辛翊華 旌閭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2. 22. 08:02



단양군은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신라에서는 내제군(제천)의 영현, 고려에서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치었고, 현종 9년에 원주에 붙었다가 뒤에 충주로 옮겼다.
충숙왕 5년 군으로 승격되어 지단양군사가 파견되었다. 적성면은 이 단양군에 줄곧 속해왔다.여지도서(1760년 경)의 방리에는 소야촌면에 하진리, 품달리, 애곡리가 소개되고 있다.구한말(1898년 무렵)의 단양읍지에 의하면 조산촌면(造山村面)과 소야촌면(所也村面)의 두 개의 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 하진·품달·애곡과 기동·소야동·대가·원곡의 마을을 포함하고 있었다. 1909년의 기록에는 조산면이라 하여 애곡(艾谷)·현곡(玄谷)·하진(下津)·상(上)·하(下)·성곡(城谷)의 6개 리를 관할하였고, 소야면은 기동(基洞)·각기(角基)·소야(所也)·대가(大加)·상원곡(上元谷)·하원곡(下元谷)·파랑(波浪)의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산면과 소야면을 합쳐 비로소 적성면이 되었으며 관할구역은 13개 리였다. 1895년 각기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8년 폐지되고 각기민원센터로 기능이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야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큰 가락처럼 생겼으므로 한 가래기 또는 대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경대와 거사평을 병합하여 대가리라 해서 적성면에 편입되었다



신상리(辛象履)·신익화(辛翊華)의 정려각(旌閭閣). 신상리의 호는 괴정, 본관은 영월로 인조 2년(1624) 이괄의 반란을 평정하여 진무원종 2등으로 선략장군이 되고 충신으로 정려되었다. 신익화는 호가 선암으로 신상리의 증손이다. 영조 때 진무 3등 공신으로 증(贈)동몽교관조봉대부가 되었으며 고종 29년(1892) 정려되었다.



신익화(辛翊華)는 숙종 24년(1698)∼영조 30년(1754). 자는 사필, 호는 선암. 괴정공 신상리의 증손으로 본디 효성이 지극하였다.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에 의병을 모집하여 죽령을 방비한 공으로 진무원종(振武原從) 삼등공신(三等功臣)이 되고 충신으로 정려되었다. <문헌>속수삼강록, 신익화묘비



신상리(辛象履) 는 선조 28년(1595)∼현종 1년(1660). 자는 춘지, 호는 괴정, 본관은 영월, 첨지중추부사 정립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창의하여 적을 토벌하는 데 전념하여 진무원종(振武原從)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제수 되었으나 사양하였다.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으로 추증되고 충신으로 정려되었다. 적성 대가리에 비각이 있다. <문헌>단양군지,속수삼강록, 신상리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