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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면 당우리 부여사(周德面 堂隅里 夫餘祠)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면 당우리 부여사(周德面 堂隅里 夫餘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 28. 17:16


원당우에 있는 김해김씨부여공파의 사당입니다.



김해 김씨 안경공파 부여공 사당이다. 부여공은 증수(增壽)로 자는 인서(仁瑞)이며 조선 성종 20년(1489) 기유생으로 문과 합격이후 통훈대부 부여현감을 역임하였다. 부인은 숙인 안동 김씨이다. 묘는 충주시 신니면 견학에 소재하고 있다. 사당은 새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여사(扶餘祠)라는 재실이 앞 쪽에 있으며 부여사 담장 좌측 밑 부분에는 사당 건립에 의연금을 기탁한 김해 김씨 부여공파 종회에서 세운 비가 있으며 그 옆에는 민한당 국회의원. 보사부장관을 역임한김판술 기공비(前國會議員 前保社部長官 道庵金公判述紀功碑)가 있다.부여사는 대종손인 김원섭이 관리하고 있다





당우리는 본래 충주군 덕면에 속한 곳이었는데 1914년 군․면 통, 폐합시에 당모루(堂隅), 돌모루(石隅), 버들골(柳洞 :上柳洞, 下柳洞), 신대리(新垈里)와 신니면 수청골(水淸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당우리(堂隅里)라 하고 주덕면에 편입하였다. 마을 이름은 원당우(元堂隅), 유동(柳洞), 석우(石隅) 3개 마을이 있다.(당우리 마을 홈페이지에 의하면 당모루(當隅), 당우리(當隅里)라고 표기하였는데 “當” 표기는 오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마을의 유래를 추론하면 산제당, 즉 서낭당 모롱이가 됨으로 “堂”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마을 명칭에 대하여는 산신당 모롱이라는 연혁이 있어서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堂”이란 의미는 ‘번듯하다’, ‘훌륭한 태도’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隅”는 ‘모퉁이’, ‘기슭’이란 의미와 ‘약간 돌아 앉아 있는 모습’이란 뜻도 갖고 있어 “堂隅”를 ‘반듯하게 약간틀어 앉아 있는 모습’이란 해석도 가능하겠다. 즉 마을 자체가 자급이 가능한 들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의연하게 터 잡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3개 마을의 생성 시기는 오래되었지만 6. 25전쟁 시와 충주댐 수몰지역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마을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특정 성씨가 집성하는 모습은 거의 없으며 제일 많은 성씨가 유동 마을의 성주 이씨 10가구 정도이고, 기타 5~6가구 정도이며 3개 마을 공통적으로 다양한 성씨와 본관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윤완섭 소유의 17~18C의 호구단자를 검토해 본 결과 당우리의 중심 마을은 원당우나 석우 마을이 아닌 유동마을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즉 ‘덕면 유동리’ 라는 지명이 나오고 있어 당우 라는 지명은 후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도천은 주덕읍의 상징적인 하천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는데, 특히 당우리에서는 갑신 장마에 대한 얘기가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갑신 장마란 1944년 일어난 장마를 일컫는데 이 당시 당우리 쌔께들을 보호하고 있던 제방이 터져 많은 재산상의 피해가 있었다. 들판에 있는 집들은 전부 물에 잠기고 나이어린 이들은 소 등에 얹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주덕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