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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각자 - 김 수,한덕필.송재성,원석주,(舍人巖刻字 - 金 燧, 韓德弼.宋在誠,元錫周)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사인암각자 - 김 수,한덕필.송재성,원석주,(舍人巖刻字 - 金 燧, 韓德弼.宋在誠,元錫周)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2. 7. 05:20






사인암벽에 각자되어있는 이름입니다

김 수(金 燧), 한덕필(韓德弼)송재성(宋在誠)원석주(元錫周)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김 수(金 燧)에 관해서는 알려진바가 많치 않다.


한덕필(韓德弼)은 아버지는 한 지(韓 祉)이며  음직으로 참판에 이르렀다.


송재성(宋在誠)은 진천인으로 순조19년(1819)기묘년 식년시 진사2등 23위로 급제하였다.자는 성지(成之)이며 1798년(정조22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문회(宋文晦)이며 장인은 판서를 지낸 신대현(申大顯)이다.


원석주(元錫周)는 원주인으로 자(字)는 유한(維翰)이며 계묘(癸卯) 1783년 (정조 7년)에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이참(吏參)을 지낸 원재명(元在明)이며 생부는 원재장(元在長)이다.군수(郡守)에 이르렀다.


원석주(元錫周)의 아버지인 원재명(元在明)은  본관은 원주()이고, 자는 유량()이다. 예조판서를 지낸 원경하()의 손자이자 우의정을 지낸 원인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서 진사 3등으로 합격한 후, 음보로 벼슬에 나아가 사복시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39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유학을 진흥시키고 어려운 백성을 구제하는 데 대한 상소문을 올렸다.
1803년 부수찬·부교리·응교 등을 역임하였고, 1804년 동지정사의 서장관이 되어 정사 김사목()·부사 송전() 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8년 성균관대사성에 올라 1811년까지 지내다가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13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고, 가선대부에 가자(加資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