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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면 구인리 과천재(長安面 求仁里 菓泉齋) 본문
장안면 구인리에 위치하고 있는 과천재(菓泉齋)라는 재실입니다.
구인(귀신다리, 귀인다리) : 옛날 귀신교(鬼神橋) 또는 지렁이 들()이라고부르던 곳이다.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이성만(李成晩), 은만(殷晩)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당시 보은 현감으로 있던 이번(李蕃)이 영의정으로 있던 그의 아우 이여(李畬)와 함께 이 마을에 들려 두 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극찬하고 마을이름이 귀신다리가 아름담지 못하다고 하여 영의정 이여(李畬)가 “효제(孝悌)는 어진 것이 근본이다”라고 말하며, 마을 이름을 구인교(求仁橋)라고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후 행정구역 개편시 구인리라고 하였다.
164 165 마을탐방 3장안면 Ⅰ 어질게 살아가는 선비고을 │ 구인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은 조선조 숙종 때까 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의 이성만(李成晩), 은만(殷晩) 형제의 효성과 우애가 조정에까지 퍼져,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이여가 마을에 들렸다가, 마을 이름으로 귀 신다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하고, “효제(孝悌)는 바로 어진 것이 그 근본이다.”라고 말하며 마을 이름을 ‘구인교(求仁橋)’라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한다. 그 후 행정구 역 개편에 따라 구인리가 되었다. 이곳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마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4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1589년의 일이다.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이며 무신이었던 불곡(佛谷) 이천 의 후손인 이성만, 이은만 형제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부터이다. 이때부터 구인리는 예안 이씨(禮安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다. 예안 이씨 종중 재실인 영창재(永昌齋)는 1693년 건립된 것으로 1917년 소실되었던 것을 1922년에 중건하였다. 예안 이씨의 혼이 살아 숨쉬는 구인리는 지금도 그 후손들이 넉넉하지는 않지 만 훈훈한 인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서로를 아끼며 위해 주는 마음은 어느 곳보 다도 넉넉한 곳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자애로서 자손을 가르치며, 출향인들의 깊은 애향심도 만만치 않은 마을이다. 구인리 이장을 맡고 있는 이우직 씨는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협에 서 선정하는 새농민상 본상을 충북에서 첫 번째로 수상했으며, 2013년에 철탑산업 훈장을 수상한 충북의 대표 농업인이다. 보은 지역의 방울토마토 품질을 높여 해마 다 일본에 수출하고 있어 지역의 효자 농산물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일등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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