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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가양리 이해의 묘(米院面 佳陽里 李海의 墓)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가양리 이해의 묘(米院面 佳陽里 李海의 墓)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7. 7. 08:51



이해는 (?∼1531(중종 26). 조선 중기의 무신입니다

1510년(중종 5) 군기시직장()으로 재직하였고, 1514년 감찰()에 제수되었으나, 1510년에 일어났던 삼포왜란 당시 왜적이 웅천성()을 포위했을 때에 주장군관()으로서 먼저 도망쳐서 성이 함락되게 하였다는 이유로 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515년 보령현감()을 거쳐, 이듬해에는 조지서사지()에 제수되었고, 이어 1518년부터 평안도우후(), 고성현령()·제주판관()·훈련원부정() 등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항상 경오왜변() 당시 웅천에서 도망했던 일로 탄핵되어 관직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1531년 창성부사(使)로 재임하다 죽었다. 경오왜변() 때 현감() 한윤()은 외로운 군대를 거느리고 화살이 떨어지고 힘이 다하도록 싸웠고, 그는 도망갔기에 성이 함몰된 죄가 실제로 그에게 있는데도 도리어 한윤이 죄를 받았다. [李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경주이씨 이공린의 무덤밑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석등 모든것은 새로 구비했으며 다른곳에서 이장한 듯 무덤등을 꾸민것이 얼마 되지 않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