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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사락리 이진항묘지(周德邑 社樂里 李震恒墓地) 본문
쌍분으로 호석을 두르고 장군석과 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장군석은 여러가지 형태등으로 보아 후대에 다시 세운 듯 하다.
음동 마을회관(경로당)에서 동북쪽으로 산을 올라가면 장군석이 보인다. 산 밑에는 한우를 사육하는 축사가 있다. 축사가있는 집에서 곧바로 올라가면 된다. 비석전면에는 ‘절충장군 행 산산진병마첨절제사 전주이공진항지묘(折衝將軍 行蒜山鎭兵馬僉節制使全州李公震恒之墓), 배숙인 풍산김씨 쌍부(配 淑人 豊山金氏 雙祔)’라 새기고 후면의 기록을 정리하면, 태조대왕의 제 1남인 진안대군(鎭安大君)의 휘(諱)는 방우(芳雨)요 시호(諡號)는 정의(靖懿)이다. 공의 10세손인 공(진항)은 서기 1644년(인조22) 갑신(甲申)정월 11일 제내리 공말 사저(私邸)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은 양지현감(陽智縣監) 김시필(金時弼)의 딸이다. 숙종 2년(1676) 33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행 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충무위 부사맹(忠武衛副司猛)을 거쳐 62세에 산산진병마첨절제사(蒜山鎭兵馬僉節制使)로 부임하여 군무제사(軍務諸事)에 진력하였다. 재임의 교지(敎旨)가 내렸으나 사양하고 귀향하여 숙종 41년(1715) 3월 23일 71세로 고종명(考終命)하였다. 사락리 음동 황금산 갑좌(甲坐)에 안장한 후 5월 3일 숙인 김씨가 서거하여 공의 묘소에 쌍부(雙祔)하였다.1972년 정월 일 후손 일동 건립
사락리는 사람들이 살지 않던 황금곡(현재 사락리)을 처음 개척한 사람들은 함종어씨, 의령남씨, 상주박씨였다고 한다. 함종어씨 입향조인 어맹종(魚孟淙)의 배위(配位)는 의령남씨인데 외조부가 태종의 첫째 왕자인 경녕군(敬寧君)이다. 경녕군의 묘소가 음동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이곳에 터를 잡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1898년에 발간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의하면, 충주군 덕면의 9개 리 중에 황금곡리와 사락리가 보이고, 1912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덕면 26개 리 중 용동, 매남리, 사락리, 중리가 보이고, 1914년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편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便覽)』에는 11개 리 중 사락리만 보인다. 이것은 용동, 매남, 사락리, 중리가 하나로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장이 있는 행정리로는 매남, 원사락, 엄동의 3개 마을이 있다.
이 묘에 세워진 장군석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양식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양식상 특징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견으로는 그리 오래된 장군석 같지는 않다.
리진항(李震恒 1644~1714) 은 강희(康熙) 15년(1676) 3월21일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담력이 있고 기개가 당당하여 무인 기질을 보여 주었다. 양지 현감을 지내고 은퇴하여 불무리에 살던 김시필(金時弼)의 눈에 들어 그 사위가 되었다. 벼슬이 산산진 병마첨절제사에 이르렀으며 숙종 40년(1714) 갑오 3월13일 돌아가시니 사락리 음동 황금산 선영 외 백호 갑좌에 모셨다. 숙부인 풍산 김씨(1644~1718)는 김시필의 딸로 병마첨절제사 공과 나란히 묻혔다.첨사공 이진항의 관직은 후손인 이복영(79) 씨가 간직하고 있는 교지를 통해 확인할수 있다. 이들을 발행연도 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강희 15년(1676) 3월21일충의위 이진항 무과병과 제칠천일백십이인 급제출신
강희 17년(1678) 정월25일 어모장군 행용양위 부사과
강희 30년(1691) 5월22일 절충장군
강희 30년(1691) 5월26일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강희 31년(1692) 4월 절충장군 행충무위 사용
강희 31년(1692) 7월 절충장군 행충무위 부사맹
강희 44년(1705) 7월29일 절충장군 행산산진 병마첨절제사
강희 17년에 어모장군 행용양위 부사과가 된 것은 등과(登科) 전의 자질을 인정받은 것이고, 강희 30년 5월 22일 절충장군이 된 것은 전주에 토포사로 내려가 순창의 명화적 백일생 등 6명을 잡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그리고 순찰사인 도사가 산산첨사 리진항에게 내리는 전령이 하나 있다. 전령의 내용은 ‘별중 영장으로 다시 임명하니 장계의 내용을 잘 살펴 군무 일체를 진심으로 맡아볼 것이며 군의 규율을 범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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