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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효촌리 김자정사단비(南一面 孝村里 金子汀祀壇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효촌리 김자정사단비(南一面 孝村里 金子汀祀壇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0. 28. 06:22



김자정(金子汀) 전서공(典書公)

김자정 초휘 진용(震龍) 호는 휴암(休庵) 공조전서 시는 문열(文烈)이다.
태사공(휘 인관)의 9세손(1348~1391)으로 거구, 범초, 대담, 무쌍하며 옳은 일에는 항상 앞장섰다. 공민왕초, 홍건적이 개경 근방까지 쳐들어와 상하가 피난길에 분주한데 공은 피난은 커녕 동지들을 모아 창의군(彰義軍)을 일으켜 관군을 도와 평정에 공이 컸다. 당시도원수 정세운(鄭世雲)은 그 어린몸으로 의기가 가상하다며 동량지재(棟樑之材)라며 염흥방동정(廉興邦東亭) 선생 문하생이 되게 했다. “고려사 참조”


공의 학문은 일취월장으로 공민왕 14년 사마시에 등과하고 동왕 16년 정미에 문과 장원하니 스승이요, 권신인 염흥방은 자기 동정학당이 명문이며 영재가 많다고 기고만장했다. 이에 공은 동료들에게 춘추범절은 숙수참저(熟穗斬低)라며 경계할 것을 일렀다.
공은 입사후 청렴과 공명적덕과 삼벌을 엄수 신망속에 승자를 거듭 우왕13년 정묘에 판정공사 ‘= 공조전서로 변방하고 여진정벌에 유공’ 삼한후작 상락군에 봉해지다.


공양왕 3년 6월 황해안에 왜구가 창걸하니 몸소 출전중 전상으로 졸하니 옹은 문상(問喪) 사포백(賜布帛)하고 문하찬성사 도성령 병부령 삼중대광 표기대장군으로 추증하다.  (종1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