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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리 당간지주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외사리 당간지주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3. 11. 13:42

외사리사지는 괴산군청 남동쪽 6.5㎞ 지점의 외사리 삼성마을에 위치한다. 외사리는 군자산과 오봉산, 성불산 등에 둘러싸인 산간분지 지형이고, 사지는 외사리를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달천의 동쪽편 평야지대에 있다. 이곳에는 마을과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논 한가운데에는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사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당간지주가 있는 외사리 390-1번지 일원의 경작지와 마을이다. 기존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삼성마을 전체가 사지 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주변은 경지정리 후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사지가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또한 당간지주 북쪽 80~100m 지점에는 민가 주변에서 많은 양의 유물과 초석, 석탑재 등이 확인되므로 사찰의 주요 건물인 금당지와 강당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외에도 기존 조사 보고서에는 많은 양의 초석과 장대석 등 건물 관련 치석재와 석비, 귀부 귀갑문석(귀부편), 석등간주석편, 안상석, 기타 치석재 등의 석조물이 보고되어 있다.

 

 

한편 사지는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괴산 외사리 승탑(보물 제579호)의 원위치로도 알려져 있다. 승탑은1930년경 일본인이 사지에서 반출하여 일본으로 가져갈 계획으로 인천항까지 갖고 갔던 것을 故 간송 전형필씨가 우연히 발견하고 매입하여 자신의 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고 한다. 1967년 조사에 의하면 승탑의 원위치는 당간지주에서 동쪽 500m 정도 떨어진 도로변으로 민묘 2기가 있을 뿐 별다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추정사역은 삼성마을과 주변 경작지를 포함한 매우 광범위한 규모로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각 200m, 동쪽과 서쪽으로 각 50m 정도이다. 이 가운데 중심사역으로 보이는 곳은 414, 418번지 일원이다.
이곳에는 민가가 건립되어 유구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서 석등 간주석편을 비롯한 많은 양의 치석재가 확인된다. 마을 주민 김종태(64세)씨의 전언에 의하면 414번지 민가 주변이 과거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또한 당간지주에서 남쪽 180m 거리에 있는 448번지 경작지 부근이 승탑의 원위치라고 한다. 그러나 1967년에 보고된 내용으로 볼 때 448번지 일원은 승탑을 반출하기 전에 임시로 옮겨 두었던 곳일 가능성도 있다.
사역 전체에서는 기와편, 토기편, 청자편 등의 유물이 다량 확인된다. 

 

 

그러나 추정사역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도로변 379, 391, 391-1, 445번지 일원의 경작지는 경지정리가 이루어진 탓인지 유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와편은 선문, 종선문, 사격자문, 어골문, 어골변형문, 정격자문, 집선문, 집선복합문(집선문+원문), 복합문(능형문+화문), 무문 와편 등의 평기와류와 연화문수막새편, 주연부에 연주문이 있는 암막새편 등의 막새
류가 있다. 토기편은 내박자흔이 남아있는 동체부편이고, 청자편은 녹청색의 저부편이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조사에 의하면 명문복합문(大匠◯頁+卍+어골문) 와편을 비롯해 화려한 형태의 연화문 수막새와 당초문, 보상화문, 귀목문, 조문 암막새, 귀면와편, 연화문전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소재문화재는 당간지주와 석등 간주석편, 치석재 12매가 있다. 또한 사지에서 반출된 것으로 알려진 승탑은 간송미술관에 있고, 1978년 사지 서쪽 하천변에서 발견된 비석편 1점은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 조사 보고서에 기록된 석탑재와 귀부편, 안상석, 초석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9호)는 남향(S-10°-W)으로 전체 높이 3.24m이고, 전체 너비 1.6m이다. 기단부는 지표상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간대와 지주만이 확인된다. 간대는 전체 크기 62×78×23.5㎝이고, 직경 56㎝, 49㎝의 원좌가 2단으로 되어 있다. 그 위에는 직경 29㎝, 높이 5㎝ 크기의 원형 돌기가 있다. 이 원형 돌기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지주는 너비 70㎝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고, 각 지주의 하부 너비는 43~44㎝ 정도이다. 형태는 평면 사각형의 기둥 형태로 위로 올라가면서 너비가 좁아진다. 지주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호선을 그리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다. 지주 내면에서 간공은 확인되지 않고, 간구는 정상부 내면에 방형의 홈을 파서 마련하였다. 간구의 크기는 30×30×15㎝이다.
당간지주의 조성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괴산 외사리 승탑(보물 제579호)은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승탑은 전체 높이 3.5m로 기단부와 팔각당형의 탑신부, 상륜부의 일부만 남아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석은 방형의 판석으로 되어 있고, 하대석은 2단으로 하단에는 각 면에 2구의 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안상 안에는 화문이 표현되어 있다. 상단 하대석은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모서리마다 귀꽃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상면에는 3단의 괴임과 1단의 내반형 괴임이 치석되어 있고, 그 위에는 중대석이 있다. 중대석은 각 면에 방형틀을 마련하였고, 그 아래에는 둥글게 치석한 괴임이 있다. 괴임안에는 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은 앙련이 표현되었
고, 하단에는 각호각형의 괴임이 있으며, 상단에도 각호각형의 탑신괴임이 있다

 

 

탑신석은 하부가 상부보다 넓게 치석되어 있고, 각 면에는 방형틀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정면에는 문비가 조각되어 있고, 문비 안에는 자물쇠가 표현되어 있다. 옥개석은 팔각으로 하면에는 각호각형의 옥개받침이 있고, 처마부분은 약간 호형으로 치석하였다.
옥개석 상부에는 연판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복발과 보주가 있다. 비석편은 1978년에 사지 서쪽 강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높이61㎝, 너비 43㎝, 두께 23㎝이고, 비의 하단부만 일부 남
아있다. 글씨는 비의 한쪽 면에서만 보이고, 120자 정도가 남아있다. 그러나 판독이 안되는 글자가 많아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며, “禪院”, “禪師禪山寶樹” 등의 글자로볼 때 외사리 승탑의 주인공에 관한 비석으로 보인다. 조성시기는 고려초기로 추정된다.석등 간주석은 외사리 418번지에 있다. 단면 육각형이고 절반정도가 파손되었다. 크기는 잔존길이 60㎝, 직경 17㎝이다.


 

외사리사지는 사명이 알려져 있지 않고, 문헌기록도찾을 수 없으므로 창건 및 폐사 등과 관련된 연혁을 알수 없다. 다만 산포유물과 소재문화재, 이동된 승탑의 조성시기로 볼 때 사찰은 통일신라에서 고려후기까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물의 산포범위와 당간지주, 마을 전체에 남아있는 소재문화재 등으로 볼 때 사찰은 남쪽을 바라보고 대규모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추정사역에서는 마을과 경작지가 조성되어 유구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포유물의 양이 많고 지형변화가 크지 않으므로 매장유구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한국의사지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