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불정면 창산리 이국헌선정비(佛頂面 倉山里 李國憲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창산리 이국헌선정비(佛頂面 倉山里 李國憲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 10. 14:49

불정면 창산리 마을어귀에 남창마을 유래비 옆에 있는 이국헌의 선정비이다.

비석의 크기는 105*65*24센티로서 기단부는 포장도로에 묻혀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목사이후국헌선정애민영세불망비(牧使李侯國憲善政愛民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1691년(康熙30)이라는 조성연대가 기록되여있다. 이국헌은 당시 충주목사를 지낸 인물이다.

 

목사이후국헌선정애민영세불망비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선정비는 노은에 1기 신니면에 2기 용두동에 마애비1기 음성향교비석군에 1기가 자리하고있다.

 

창산리는 본래 충주군 율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단풍리(丹楓里), 창리(倉里), 하산리(霞山里), 목도리(牧渡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창리(倉里)의 창자와 하산(霞山)의 산자를 따서 창산리(倉山里)로 하였는데 1961년 행정구역 세분화로 남창과 하산으로 분리되었다.

비석이 있는 남창(南倉)의 지명은 이조때 충주목의 남쪽 마을에 창고가 있던 곳으로 남창으로 불리우고 있다

남창에는 담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담안은 충주목 옛 창고터가 있던 곳으로 창고가 없어지고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가까운 곳에 흐르는 달천(목도강)을 통하여 수운이 발달하여 이 곳에 곡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만들었다

이국헌의 선정비는 남창과 관련하여 세워진 선정비인 듯 하다

 

 

이국헌은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연안(). 자는 문숙(), 아버지는 병절교위()를 지낸 이여연()이다.

이국헌은 1660년(현종 1) 증광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1년(숙종 7) 금산군수로 재직하며 선치()하여 포상을 받았으며, 1691년(숙종 17) 충주목사로 있으면서 주치()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의창()인 양진창()을 호조의 승낙을 받아 주치와 금천()으로 옮겼다. 1693년(현종 19) 목사 윤가적()과 함께 충주의 아전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을 올려서 혐의자 여섯 사람을 가두고 서울로 압송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원사락 아랫담 뒷산에 있다. 상석과 망주석 1조가 있으며 2004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