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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면사무소 비석군(遠南面事務所 碑石群)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원남면사무소 비석군(遠南面事務所 碑石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8. 14. 07:09

원남면 사무소 뒷길에 있는 비석군입니다.

 

원남면내에 산재되어 있는 비석을 한군데 모아 놓은듯 합니다.조선시대의 관찰사와 군수등의 비석부터 근래 면장까지 6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남면장 반병억의 공적비입니다.

 

반명억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이다.1924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태어났다. 음성공립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였다.소이부면장과 원남부면장을 역임하였고 1960~1961년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원남면장으로 재임용되어 1981년까지 근무하였다.

오랜 기간 면장을 맡으면서 많은 지역 현안 사업을 처리하여 면민의 신임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공화당 관리장과 민주정의당 중앙위원 및 군정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1989년 향년 66세로 사망하였으며, 묘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다.

공적비는 원남 면사무소뒷편에 길가에 있으며 원남면장반공병억공적비(遠南面長潘公炳億功績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면장송순영의 기념비입니다.

 

원남면 사무소뒷편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면장 송순영의 기념비이다.

비석에는 면장송순영기념비( 面長宋淳永紀念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일부 글자는 훼손되여 있다.

송순영(1883-1952)는 1931년 원남면장을 역임하였다.

 

관찰사이명응의 영세불망비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명응 불망비의 모습이다.글씨를 자세히 보면 관찰사이공명응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明應永世不忘碑)라고 볼수가 있다.

이명응은 1827(순조 27)∼?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의(景誼). 참판 휘중(彙重)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어재찬(魚在瓚)의 딸이다.아내는 홍재학(洪在鶴)의 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촌동생이다.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민승호(閔升鎬)와 함께 홍문관교리에 파격적으로 임명되었다.다음해 식년문과의 충청도경시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식년시의 초시는 관찰사가 주관하기로 예정되었으나 대원군의 심복으로 경시관이 모두 교체되었다.

그뒤 순조롭게 승진하여 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71년에는 종정경이 되어 전주이씨가 아닌 자들이 포함되어 말썽이 된 『선원보략(璿源譜略)』의 개수를 담당하였다.

대원군이 실각한 뒤에도 계속 종정경으로 남아 있다가 1877년 다시 부제학으로 옮겼다.큰 가뭄이 들고 전염병이 유행하던 다음해에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어 2년반 동안 재임하면서 치적이 있어 한 차례 연임되기도 하였다.

 

1881년 개화정책에 반대하는 유림들의 상소가 있은 뒤 민씨일파를 중심으로 군권이 개편될 때 도총부도총관에 특별히 발탁되었다.또, 이재선(李載先)사건이 일어나자 형조판서가 되어 추국(推鞠)에 참여하였다.

임오군란 후 피신하였던 민비가 환어할 때 배종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1893년 판의금부사에 이르기까지 민씨정권하에서 이조판서·형조판서·지종정경 등 요직을 지냈다.

 

 

암행어사 김명진의 선정비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명진의 불망비이다.비석을 바라보면서 왼쪽에서 4번째 비석이다.개석 및 방부 없이 비신만 존재한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39㎝, 앞면 54㎝, 측면 22㎝이다.


비신 앞면에는 해서로 '수의김공명진영세불망비(繡衣金公明鎭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수의(繡衣)란 암행어사의 별칭이다. 암행어사는 지방의 군현에 밀견(密遣)하여 변복으로 암행하면서 수령의 득실과 백성의 질고를 탐문하여 사실대로 복명하는 것을 직무로 하는 특명사신으로 임금의 근시(近侍)의 당하조관(堂下朝官) 중에서 임시사신으로 특명하였음.

 

조선시대 음성군수 윤필의 철덕선정비입니다

 

원남면 보천리 원남면사무소의 길가에 위치한 공적비중에 하나인 조선시대의 군수 윤 필의 영세불망비이다.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고종때 활동한 내역이 적혀있다. 윤 필에 대하여는 자세한 내력을 알수가 없다

음성읍 음성향교 공적비중에 윤 필의 공적비가 일기 존재하고 있다.비의 건립시기는 을미년(1895년)으로 추정된다.

비석에는 군수윤공필청덕선정비(郡守尹公泌淸德善政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원남농협장을 지낸 성주봉의 공적비입니다.

 

성주봉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이다.
음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사리면(沙梨面) 근무를 시작으로 금왕면(金旺面)을 거쳐 3년간 음성군(陰城郡)에서 근무한 후 원남면장(遠南面長)으로 임용되어 2년간 고향을 위해 헌신·노력하다가 퇴임하였다.

원남면 의회 의장을 8년간 지냈고 원남면 농업협동조합장을 역임하였다.

내무부장관 표창과 전국엽연초연합회장상을 수상하였다. 원남면 농업협동조합에는 원남면민의 이름으로 공적비(功績碑)가 세워져 있다.

공적비에는 원남농업협동조합장성주봉공적비(遠南農業協同組合長成周鳳功績碑)라고 음각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