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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공이리암소바위암각자( 乷味面 公耳里암소바위巖刻字) 본문
관광명소로 이름난 월악산 송계계곡 못미처 충주와 제천 경계 지점이 살미면 공이리 인데 이곳의 풍광 또한 수려하다.
이곳 공이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암소바위라 하는 곳이 있는데
숫바위 아래에 공동산수자웅암석(崆峒山水 雌雄岩石) 라고 적혀있는 암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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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바위에 전하는전설
살미면 공이동의 계곡은 피서지로도 유명한 곳인데 암소바위의 전설이 흥취를 도와 주는 곳이다.
옛날 신당리 수용목이라는 마을에 한 내외가 소를 기르며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편은 유명한 구두쇠로서 몰인정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 집 식구나 가축들이 먹는 것조차 아까워 하면서도 일만 혹사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 아내는 배를 줄이며 험한 음식으로 견디고 살아 갔는데 그러면서도 자기 남편과 소에게 정성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자니 때로는 배고픔을 참다 못하여 소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소와 같이 초근목피를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 아내는 배의 식량이 많아 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남편은 항상 자기 아내 식량이 너무 많은 것을 책하며 입버릇처럼 [쇠배지]라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어는 가을 날 남편이 누렇게 익은 콩을 한 짐 꺾어 왔다. 아내는 그 콩을 까서 밥에도 놓았지만 농사에 골몰하는 소 생각이 간절해서 소에게도 몇 번 삶아 주었다. 어느날 남편은 그 콩이 어떻게 해서 없앴느냐고 화를 내고 을러 댔다. 아내는 자기가 모두 먹었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에게 발길질을 하다보니 연약한 여인인지라 쓰러져 신음 하다가 급기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은 얼마 후에 딴 여자를 후처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밥먹는 것이 안보였으므로 내심 퍽 기뻐하면서 밥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식량이 턱도 없이 줄어 드는 것을 깨닫게 되어 남편은 다시 의심이 생기었고 그 후로는 숨어서 아내의 거동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이게 왠일인가 아내는 틈만 있으면 양식을 가져다 소와 함께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의외의 사실에 놀란 남편은 노기가 충천해서 그 여자도 죽여 버리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이상한 육감이 머리를 스치며 불운으로 죽어간 아내의 생각이 났다.
필경 먼저 아내의 넋이 환생해서 보복하는 것이니라 생각되어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벌써 사람은 없고 소 두 마리가 공이동 쪽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목이 메인 남편은 [여보! 여보!]하며 따라 갔는데 어느 지역까지 오더니 두 마리의 소는 두 개의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암소 바위]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또 한가지는 현재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사는 이구영씨의 증조부의 이야기이다.
때는 이조 말엽이었고 그 분을 포함해 모두 4형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장수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 4형제는 항시 이 공이동 계곡을 즐겨 찾아 이 곳에다 정자를 지었는데 4형제가 즐기는 정자라는 뜻으로 [사로정(四老亭)]이라고 명명했었다. 장소은 현재 산제당이 서 있는 위치였다.
그 분들은 바둑판을 바위에다 새겨놓고 두었는데 그 자국은 지금도 남아있다. 또 암수바위에 보면 이 분들이 써서 새긴 것이라 하는데 [空洞山水 雌雄岩石]이라고 뚜렷이 나타나 있다. 새겨보면 [이름 난 공이동 산수 계곡에 암석이 있는데 암바위와 숫바위로 이름 짓노라]하는 뜻이다.
그러니까 두 개의 암석이 있는데 약가 위쪽에 있는 바위는 좀 작고 아랫쪽에 있는 바위는 크다. 따라서 윗것이 수놈이고 아랫것이 암놈이라는 뜻으로 명명된 것이라고 보아지는데 옳은 이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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