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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신니면 용원리 용원표지석(薪尼面 龍院里 龍院標識石) 본문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외용에 용안역이 관거(官距) 45리에 있었고 충주 연원역(連原驛) 소속으로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大馬) 2필, 복마(卜馬) 5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충원현조(忠原縣條)에 용안리는 당시 주민이 95호에 남자가 278명, 여자 369명 도합 647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안용안[內龍洞]과 외룡동(外龍洞)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포리(內浦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용원리라 하고 신니면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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