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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서대리 박세환정려문(沃川邑 書垈里 朴世煥旌閭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읍 서대리 박세환정려문(沃川邑 書垈里 朴世煥旌閭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9. 17. 22:45

 

함양인 박세환의 효자문은 옥천읍 서대리 서당골마을에 있다. 1904년(고종 41)에 세워진 정려이다. 건물 양식은 다 포 형식의 공포와 맞배지붕 형태의 목조기와집이다. 건물은 2평으로 건립하였는데 현재 함양박씨咸陽朴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孝子 贈朝奉大夫 童蒙敎官 咸陽朴世煥之閭(효자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함양박세환지려)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정려는 광무8년갑진년(光武8年甲辰年)니다.

 

 

박세환은 평소에 부모님 모시기를 한 번도 마음 상하게 해드린 적이 없고 항상 기쁘고 편안하게 봉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지극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효자로 정 려되었다.
현재의 효자문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다시 건립한 것으로 박세환의 묘소 는 동이면 적하리에 위치하고 있다. 매년 10월 14일에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대2리 마을회관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얕은 야산에 있는 박세환효자문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길로도 차량진입이 가능하다, 옥천읍 서대리 411-2번지를 찍으면 효자문 바로 밑에까지 진입을 할수 있습니다. 골목길이 좁으니 서대2리 마을회관이나 도로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도 구경할 겸 천천히 걷는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효자문과 주변은 후손들에 의하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대리(書垈里)는 원래 군남면(郡南面) 송고개리(松古介里), 신대리(新垈里), 서당리(書堂里)와 신원리(新院里) 일부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이를 합쳐 서대리라 하고 옥천읍에 속하게 하여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남면 송고개리에 35호, 신원리에 69호가 살았으며, 1891년 기록에는 송고개리에 10호, 신대리에 10호, 서당리에 12호, 신원리에 45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이곳의 송고개리는 현 솔고개를 가리키는 것이며, 신원리는 현 군남초등학교에서부터 원각(院覺)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곳에는 관리들의 여행 중 숙식을 제공하던 금천원(金川院)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하여 군내면이 되면서 이 때 송고개리, 신대리, 서당리와 신원리 일부를 합쳐 서대리라 하였다. 서대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을 합하면서, 서당리의 서자와 신대리의 대자를 한 자씩 취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서당리는 마을에 학문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기 때문이며, 신대리는 새로 마을이 생겼다 하여 신대리라 부르게 되었다.

송고개리는 소나무가 많이 우거진 고개라 하여 “솔고개”라 불렀는데 한자로 쓰면서 발음대로 하여 송고개리가 되었다. 소나무가 많아 솔고개가 되었다는 유래와 함께 우리말 변천에 따라 솔고개는 ‘작은 고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마을에는 옥천조폐창이 들어서 20년 가까이 화폐와 유가증권 등을 우리 고장에서 생산했고, 1999년 경산으로 조폐창이 옮겨진 이후 2003년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에 매각돼 현재 종교단체가 입주해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 있던 중화실업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 매각되었다. 서당골에는 특히 함양박씨(咸陽朴氏) 집성촌으로 박세환 효자의 효성을 기리는 박세환 효자비가 세워져 있으며, 1964년 개교한 군남초등학교가 있다.

 

기존에 있던 산소들을 모두 정리하여 단을 만들었습니다.산소에 있던 각종석물들이 보입니다.

 

박세환 효자문뒤로 있던 함양박씨 산소들을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깨끗하고 산뜻하니 잘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기존 산소에 있던 혼유석 장명등 등을 한 곳에 가지런히 잘 정리하여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