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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석호리 명월암(郡北面 石湖里 明月岩)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군북면 석호리 명월암(郡北面 石湖里 明月岩)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9. 17. 12:43

 

대청호에서 바라보며 찍은 청풍정의 모습입니다[옥천군지]

 

 

군북면 석호리 진걸마을에서 대청 댐 호반을 따라 남쪽으로 1㎞쯤 따라 가면 층암절벽으로 된 자그마한 산 이 있다. 그 산의 낭떠러지 바위에 ‘明月岩(명월암)’이란 세 글자가 음각되 어 있다. 명월암이라 쓴 바위 위에는 청풍정淸風亭이란 정자가 우측에 있고 밑에는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며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그 경치가 일품이다. 청풍정 은 바람이 시원하고 공기가 맑을 뿐 아니라, 인적이 많지 않아 고려 때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아 실향失鄕의 한을 달랬다고 전 한다.

 

 

明月岩이라고 한자로 각자되어 있습니다.

 

옥천향토전시관에 있는 명월암에 대한 시입니다.

 

명월암에는 김옥균(金玉均, 1851∼1894)에 관한 얘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김옥균은 1884 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 등과 갑신정변을 주 도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혜상공국당상惠商公局當上이 되었다. 그러나 청 군사들의 방해로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가자 이곳 청풍정으로 내려왔다. 이때 김옥균은 명월明月이라는 어여쁜 명기를 데리고 내려와 청풍정에서 울분을 달래며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정치적 야망을 키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명월이는 김옥균과 단둘 이 좋은 곳에서 소일하고 있는 것이 일생의 영화를 누리는 것 같이 행복하였다. 그러나 자 기로 말미암아 김옥균이 장부의 기개를 펴지 못할 것을 우려한 명월이는 어느 날 김옥균 이 고이 잠든 자정에 살며시 청풍정으로 나와 김옥균의 앞날을 위하여 자기는 먼저 간다 는 글을 남겨놓고 언덕 아래 물에 떨어져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사실을 안 김옥균은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지낸 후 청풍정 아래 있는 바위 절벽에 “明月岩”이란 세 글자를 새  겨놓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전한다.

 

 

그 후 청풍정은 실화失火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1996년 옥천군에서 명소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수몰 예정지의 침수를 감안하여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청풍정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인 ?옥천군읍지?에 의하면 본래 명칭은 장일암藏 日庵이며, 불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일보』의 「개혁의 풍운아 김옥균」이라는 연재된 글에 의하면, 갑신정변이 삼일천하 로 실패하자 정변 5일 후 1884년 12월 9일 제물포항을 통해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11명 은 일본 망명길에 올랐다. 이 사실을 독일 F. H. 뫼르셀의 『갑신정변 견문기』는 ‘초라하게 퇴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김옥균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중에 청풍정에서 명월이와 울분을 달래며 권토중래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호리 마을 원로가 생생하게 증언함으로 종전의 기록을 사실로 보는 견해와 다른 내용이 혼재하는 만큼 앞으 로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옥천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