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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비석군(安南面 蓮舟里 碑石群) 본문
배바우 마을 뒤편에 광산김공삼순송덕비(光山金公三淳頌德碑)와 전참봉김용준시혜불망비(前參奉金容濬 施惠不忘碑)가 있다. 배바우 주위에는 웃골, 비들먹재, 점말, 피실, 황골, 맘마골, 분터골, 왜마루 등이 있다. 점말서 강가로 내려가다 연지동이 있고 강가에 안피실이 있는데 모두 폐촌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배바우 뒷편에 있던 비석들이 무슨일인지 공원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송덕비와 불망비가 있던 곳이 사유지로 경매로인해 주인이 바뀌면서 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신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천군이 광산 김씨 문중 효자비각에 수천만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펼쳤지만 2년도 안 돼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져 허술한 문화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문제의 문화재는 안남면 연주리 소재 광산 김씨 용준 효자비다. 비석 안내문에 따르면 효자비 주인공 김용준(1864~1946년) 선생은 효심이 깊었다며 김씨 문중은 그를 기리기 위해 효자비를 세웠다. 비각과 함께 세워진 효자비는 70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그 후세인 김삼순 우체국장의 공적비도 함께 있었다.군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이 효자비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2014년 비지정문화재로 분류했다. 이듬해 비각 등 주변정리 하는데 2680만 원을 투입해 보수공사를 진행했다.안남면 주민 A씨는 “국가적 비석도 아닌 개인 비각에 예산 수 천만 원을 투입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지만 국가에서 내린 효자비도 아니고 문중에서 세운 개인 비석이...그것도 100년도 채 되지 않은 비석이 문화재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자체가 문제”라며 문화재 관리행정을 지적했다.그러면서 “군 예산은 개인 쌈짓돈이 아니다. 국민의 혈세다. 혈세가 이렇게 몇 사람 입맛대로 맘대로 사용돼도 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문제는 더 있었다. 비각이 위치한 땅은 재작년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바뀌는 사태에 이르렀다. 새 땅주인 B씨는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며 김씨 문중과 옥천군에 비석 철거를 요청했으나 이행되지 않자 법원에 철거요청 소송을 냈다. B씨는 승소한 후 곧바로 철거에 나섰고 철거된 비석들은 안남면 주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에코빌광장에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다.군 관계자는 “새 소유자가 군에 철거를 요청한 적이 있었지만 공유재산 관리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군이 나서 철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이어 “안남면 입구에 있는 공적비석들이 있는 곳이 도로에 편입돼 이전할 상황”이라며 “현재 효자비가 놓여져 있는 에코빌광장으로 공적비석들을 옮길 때 효자비도 함께 공사하기 위해 그곳에 놔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하지만 주민들은 “에코빌광장은 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곳이다. 주민 의견은 묻지도 않고 면 소재지 한복판에 주민의 공간을 빼앗으며 임의대로 개인 비석들을 줄줄이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주민 의견은 묻지도 않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부터 향후 관리 행태까지 제멋대로”라고 불통행정을 꼬집었다. 출처 : 옥천향수신문(http://www.okhsnews.com)
비석의 전면에는 광산김공삼순송덕비(光山金公三淳頌德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초대 우체국장을 지냈으며 파출소를 지을때 파출소의 부지를 희사하였습니다.
김용준 효자는 1864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자상하여 항상 이웃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김효자가 8살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음식도 먹지 않고 어찌나 슬퍼하는지 전주민은 물론 문상을 온 손님들까지 울지않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도 슬피 울어 그 어머니가 더욱 마음 아파하자 오히려 어머니의 마음이 아플까봐 슬픔을 참고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그후 홀어머니 모시기를 하늘같이 하면서 최대한 봉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어머니가 병을 얻어 눕게 되자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간호를 해드리고 어머니의 대변까지 일일이 맛을 보아가며 약을 해드렸으며, 아픈 상처가 생기자 입으로 빨아내어 치료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모시니 어머니가 천수를 다하였다. 이와 함께 주민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기에도 힘을 써 현재 효자비 옆에 자선비까지 세워져 있어 효(孝)와 선(善)을 함께 행한 사람이었다. 해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두 말씩 쌀을 보태줘 1년에 1백석 정도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여졌다고 후손들은 전하고 있으며, 지금은 유명무실하지만 집안 소유였던 안남장터의 땅을 개방해 무료로 장군들이 장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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