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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 곽진은정려문(塔洞 郭鎭殷旌閭門)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탑동 곽진은정려문(塔洞 郭鎭殷旌閭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2. 10. 19:31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자리하고 있는 현풍인 곽진은과 그의 부인 인천이씨의 정려문입니다.

곽진은(郭鎭殷)은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단지주혈)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나 종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하고 약물(藥物)을 내리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그 효심에 감동하여 800금을 희사하므로 인삼을 다려드리니 부친의 병이 나았다.

1822년에 조정에 장계가 올라가 1828년(순조 28)에 정려(旌閭)되었다. 현재 청주시 상당구 탑동 251번지[탑동로 35]에 곽진은과 그의부인 인천이씨의 정려문이 있다. [郭鎭殷]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효자현풍곽진은지문 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습니다.

 

 곽진은의 처 인천이씨는 어려서부터 친정에서 부모에 효를 다하였고, 출가하여서는 시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다고 한다. 이 같은 효행이 알려져 1828년(순조 28)에 곽진은이 먼저 정려를 받았고, 1850년(철종 1)에 인천이씨가 정려를 받았다.

정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1828년에 건립하였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목조기와집으로 가구 형식은 5량가이며, 납도리집이다. 내부에는 비석 2기와 현판 2개가 있다. 중앙 벽면에는 인천이씨의 정려 현판이, 좌측 벽면에는 곽진은의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곽진은의 효자비는 받침돌과 지붕돌이 없는 비갈(碑碣)의 형태로 비신은 높이 103㎝, 폭 41㎝, 두께 20㎝의 크기이다. 앞면에는 ‘효자현풍곽진은지문(孝子玄風郭鎭殷之門)’이라는 비제가 새겨져 있다. 새겨진 글자가 훼손되어 있습니다. 인천이씨의 효부비는 높이 105㎝, 폭 44.5㎝, 두께 22㎝의 크기로 앞면에는 ‘효부정부인인천이씨지비(孝婦貞夫人仁川李氏之碑)’라는 비제가 새겨져 있다.

 

 

 

효부정부인인천이씨지비 라고 쓰인 비석이 있습니다.

 

 

인천이씨의 정려현판에는 효자증가선대부공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곽진은처효부증정부인인천이씨지문(孝子贈嘉善大夫工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郭鎭殷妻孝婦贈貞夫人仁川李氏之門)이라고 적혀있다.

 

 

 

 

곽진은의 정려현판에는 효자증가선대부공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곽진은지문(孝子贈嘉善大夫工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郭鎭殷之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능주목사 이덕수가 쓴 가선곽군진은 정려기입니다.

 

청주목사 송종수가쓴 이씨정효기입니다.

 

곽진은의 효자비는 비신의 높이 103cm, 폭 41cm, 두께 20cm의 비갈형이다.비석의 글자가 석질이 좋치않아 훼손되어 있다. 인천이씨 효부비는 높이 105cm, 폭 44.5cm, 두께 22cm로 오석의 비신이다.

정려 안쪽에는 1828년(무자) 능주목사 이덕수가 쓴 가선곽군진은정려기와 1850년(철종 1) 청주목사 송종수가 쓴 이씨정효기, 1885년(고종 22) 관찰사 심상훈이 쓴 청주곽효자정려신건기가 있다.

 

 

관찰사 심싱훈이 쓴 청주곽효자정려신건기 입니다.

 

곽은진 효자비와 그의부인 인천이씨의 효부비가 나란히 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