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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중삼리 오경례효자문(賢都面 中三里 吳景禮孝子門)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현도면 중삼리 오경례효자문(賢都面 中三里 吳景禮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 24. 19:53

 

 

중삼리는 면 북단에 위치한 마을로서 동은 죽전리, 남은 시목리, 북은 상삼리, 서는 부용면 노호리, 등곡리와 경계한다. 마을 동쪽에 진로와 카스맥주 공장이 위치하고 있다. 약 80여 세대에 1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본래 문의군 이도면의 지역으로 중삼거리 또는 중삼기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삼리라 하고 청주군 현도면에 편입되어 있고 보성오씨와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다.

 

 

이 효자각은 조선 효종 6년(1655)에 보성인(寶城人) 오경례(吳景禮)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 본래는 중삼리 양촌 마을에 세워졌는데 1980년에 중뜸마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지금의 효자각은 정조 12년(1788)에 중건하고 1980년에 해체복원하여 이건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정문 편액을 걸었다. 또한 정조 12년(1788)에 이기발(李起勃)이 짓고 8대손인 오형준(吳亨俊)이 쓴 행적기문판이 걸려 있다.

 

대부분의 효자문을 보면 얼음이 깨지며 잉어가 올라오고 필요한것은 기도로서 얻을수가 있었고 어찌보면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타고 생각이 들수가 있다. 그렇치만 효를 강조했던 그 시대의 사회상이 이러한 효자문이나 열녀문에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효자문 현판에는 효자사인보성오공경례지문효종조명정( 孝子士人寶城吳公景禮之門孝宗朝命旌)라고 적혀있다.

 

 

 

중삼리의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다.

  • 한두실 : 이 마을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
  • 아랫말 : 한두실 아래 쪽에 있는 마을
  • 안골 : 한두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정문도래 : 음짓말 북쪽에 있으며 처음 밀양 박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던 곳으로 정문이 있었다고 한다.
  • 음지말 : 한두실 동쪽에 있는 박씨 마을.

 

 

 

오경례 의 호는 자화이며, 본관은 보성인데, 이곳에서는 현도오씨 또는 현도 달계리에 많이 산다고 하여 달계오씨라 부른다. 그만큼 이곳 현도에 보성 오씨들이 오랜 세월 살아서 제2의 본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고 착했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부모님께는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같이 사냥과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으면 부모님께 요리해 드렸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환으로 기력이 쇠약해지자 백방으로 낫기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이 꿩고기를 해드리면 낫는다는 말에 하늘에 서원을 했더니 꿩이 마당으로 날아들어 공양하고, 노루의 간이 기력 회복에 좋다는 말에 노루를 사냥하기 위해 한겨울 산속을 헤매기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어느 날 날아가던 독수리가 노루를 마당에 떨어뜨려 노루 간을 아버지께 요리해서 드리는 등 하늘도 감동하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다.여름 장마철 홍수때에는 금강가에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니 커다란 쏘가리가 튀어 올라옴으로 병중의 아바지께 봉양하였다고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 앞에 움막을 짓고 정성과 예를 다하여 모시고 하산을 했으나 어머니께서 병중에 있어 놀라실까 염려되어 어머니를 뵐 때는 상복을 입지 않고 정성으로 간호해서 기운을 차리게 했다. 그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역시 3년간 묘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