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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관정리 백석정(琅城面 官井里 白石亭) 본문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白石亭 遺稿>에는 신교가 지은 國文歌辭 2篇과 時調 22首, 漢詩 3篇이 실려 있다. 1690년 朝廷의 薦擧를 받아 官職에 出仕하여 7개 部署를 맡았으며, 1699년 東部主簿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경기도 廣州 炭川 邊에 정자 臨鏡亭을 건립하였다. 1701년 광주에서 고향인 낭성면 墨井으로 還鄕하였고, 1703년 향년 63세로 별세하였다. 5량가 소로수장집으로 내부는 통칸에 쪽마루를 깔고 통난간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구조부재가 세장하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잇다. 배면 가운데 기둥은 치목하지 않은 자연목을 세워 특이하다.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기호지방의 대표적인 문인이며 가사문학(歌辭文學)의 거장인 신교(申灚)가 물 맑고 경치가 수려한 낭성면 관정리 흰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당대의 저명한 선비와 문인 그리고 조정 대신들과 학문을 교류하고 시문(詩文)을 겨루던 정자로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당시에 상류층 사회의 명사들이 진주(晋州)의 촉석루(矗石樓), 관동지방의 총석정(叢石亭), 삼척의 죽서루 등과 같이 전국의 명승지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조선시대의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인정되므로 이를 계속하여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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