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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이목리 이정사(琅城面 梨木里 梨亭祠)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이목리 이정사(琅城面 梨木里 梨亭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4. 27. 08:24

이정사의 모습입니다

 

낭성면 이목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열심을 내신 애국지사들을 모신 현충시설입니다. 소당 김제환선생을 비롯하여 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정사 밑에 있는 동네의 쉼터 정자옆에는 이 고장 출신 애국지사이신 소당 김제환선생과 동생 정당 김성환선생의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당에서 바라본 이목리의 모습입니다.

 

김제환 선생의 제자들이 1954년 이정사(梨亭祠/일명 낭성사(琅城祠),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라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후 1979년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과 성암 박유형(醒巖 朴逌馨, 1858-1929)의 위패를 같이 봉안되었다. 1969년 정당 김성환(定堂 金成煥, 1876-1958)과 각재 신태구(覺齋 申泰求, 1886-1929)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8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정사라는 현판을 걸고 있습니다.

 

 

이정사에 배향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남당 한원진은 자는 덕소로 청주한씨이다. 1682년 출생하여 1721년 익위사 부솔을 제수받고 1725년 종부시주부 장영으로 경영관으로 피선되었으나 상소하고 귀향하여 1751년 2월 69세에 병사하였다. 수암 권상하서냉의 수제자로 벼슬은 도학으로 지평이요 증직은 자헌대부 이조판서 시호는 문순공이다.

 

성암 박유형은 1858년 출생으로 1895년 의병에 참여 1929년에 별세하였다. 11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문집 6권을 간행하였다.

 

소당 김제환은 1867년 출생하였으며 경술년 한일합방이 되자 호적과 납세와 부역을 모두 거부하였으며 계축년 일본이 호적을 만들자 이 소식을 듣고 동생 성환과 제자들을 대동하여 미원헌병소에서 호적을 탈취하여 소각하고 이로 인해 선생 형제가 청주감옥에 수감되었으며 제자들도 연좌되였다. 그 후에도 일제에 항거하다 다시 투옥되어 강제 삭발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분통함에 선두산으로 들어가 움막을 짓고 절식하여 1916년 10월5일 49세로 순국하였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고 문집5권을 간행하였다.

 

 

 

사당내에 있는 위패의 모습입니다.

 

정당 김성환은 소당 김제환의 아우로서 경술국치에 소당과 더불어 항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겪었으며 일본헌병의 고문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소당의 유명으로 조상의 사적을 교정하고 후진양성에 힘쓰시다가 1957년에 별세하였다. 문집 2권이 있으며 설고일기는 1913년 2월24일 부터 1916년 10월5일에 소당이 순국하신 날까지 3년 8개월의 옥중일기로 일제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다.

 

각재 신태구는 1886년 11월 28일에 출생하였으며 소당의 수제자로 경술국치에 소당의 결의를 굳게 지켜 호적거부 납세거부 등으로 수차례 연좌되어 곤욕을 치루었다. 1953년 별세 하였으며 문집3권이 간행되었다. 위의 기술한 다섯분은 학자로서 후진양성은 물론 의병활동으로 애국자 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