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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미륵리사지귀부(水安堡面彌勒里寺址龜趺) 본문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지에 있는 고려 후기 석재 귀부.
[개설]
미륵대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륵리 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번창한 사찰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많은 고려시대 석조 유물들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사찰의 창건 시기와 관련하여 현재 통일신라시대 수법을 보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초석들이 남아 있어 창건 시기를 올려볼 수 있으나, 직접적인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향후 구체적인 검토가 요망된다.
현재 사지 일대에는 당간지주, 오층석탑, 석불입상, 석등을 비롯하여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귀부는 사각석등 옆에 놓여 있는데, 치석하다가 어떤 이유로 그만 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귀두(龜頭)와 귀신(龜身)의 외형으로 보아 귀부로 치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건립경위]
귀부는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일반적으로 비신(碑身)의 받침으로 많이 조성되었다. 귀부는 통일신라시대 초기부터 비신의 받침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능비(陵碑)나 탑비(塔碑)를 중심으로 조선시대까지 조성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꾸준하게 석비의 중요 구성 부분이 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귀부가 상징물로서 조성된 경우도 있었다. 현재 미륵리 사지귀부 상부에는 비신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홈으로 보이는 고정홈대가 마련되어 있다. 비신이 전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최초 조성시에는 비신을 세우기 위한 용도로 치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미륵리 사지 사각석등 옆에 있다. 귀부가 대형으로 옮기기 힘든 점을 감안할 때 원 위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충주 미륵리 사지귀부는 전체적으로 대형이지만 치석 수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일부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형식과 양식을 보이는 귀부로 치석하다가 어떤 이유로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대에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는 지대석을 마련하지 않고 지상에 그대로 올려져 있는데, 이러한 측면도 앞의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귀두는 목을 앞쪽으로 내민 형상으로 치석되었는데, 눈·코·입 등이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목줄기와 귀두의 표현은 조성 시기가 하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귀신 앞쪽에는 돌출되게 발이 표현되었지만 어색하다. 귀부는 측면에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귀갑도 귀갑문(龜甲紋)이 표현되지 않고 경사지게만 치석하여 투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다만 귀갑 앞쪽에는 상부로 기어 올라가는 2마리의 새끼 거북이가 표현되어 이채롭다. 또한 귀갑에는 받침 형태의 단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비신을 꽂아 고정했던 홈이 마련되어 있다. 귀부 후미는 꼬리나 다리 등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일부 귀갑대(龜甲帶)의 표현이 보이고는 있으나 전체적인 조각 기법은 어색하다.
[현황]
충주 미륵리 사지귀부는 원래 위치로 보이는 곳에 사찰의 중심축선을 약간 벗어난 지점에 있다. 어떤 성격과 용도로 귀부가 조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전체적인 형태가 귀부의 형상을 하고 있어 귀부로 치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귀부 표면에 이채로운 치석 수법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미륵리 사지귀부는 상당히 대형으로 조성되었다. 전체적인 외형과 치석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귀부의 전체적인 치석 수법과 외형으로 보아 완성하지 못한 귀부로 보이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미륵리 사지귀부는 상당히 대형으로 조성되었다. 전체적인 외형과 치석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귀부의 전체적인 치석 수법과 외형으로 보아 완성하지 못한 귀부로 보이기도 한다. 만약 완성하지 못한 귀부라면 귀부의 치석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석불 등 여러 석조물에서 치석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사례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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