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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면 탑연리 김몽로유적비(江內面 塔淵里 金夢魯遺蹟碑) 본문

통합청주시/흥덕구(興德區)

강내면 탑연리 김몽로유적비(江內面 塔淵里 金夢魯遺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4. 29. 06:18

강내면 팁연리에 있는 김몽로의 유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창의공신가선대부경상병사청풍김공몽로유적비(倡義功臣嘉善大夫慶尙兵使淸風金公夢魯遺蹟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주위로는 청풍김문과 관련된 인물들의 효자문과 설단 그리고 묘지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몽로는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미원면 월용리에 있는 김몽로를 모시고 있는 재실 모선사입니다.

 

 

미원면 월용리 모선사(米院面 月龍里 慕先祠) (daum.net)

 

미원면 월용리 모선사(米院面 月龍里 慕先祠)

상당구 미원면 월용1리 방축골에 위치한 2000년 3월에 준공된 청풍김씨의 사당입니다 숙종과 영조시절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으며 무신란 이후  황간현감과 경상병마절도사를 지낸 청풍인

blog.daum.net

 

원 일기에 의하면 김몽로는 영조 2년 6월 25일  병술 1726년 / 尹鳳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林擎宇爲玉江萬戶, 金光國爲永達萬戶, 朴枝茂爲武兼, 金夢魯爲忠淸水使, 李兌麟爲惠山僉使, 尹和鼎爲宣傳官, 金華濟爲中樞都事, 李殷佐爲訓鍊判官, 李益海爲安東營將, 南延年爲羽林將, 成爾鴻爲副率, 朴珩爲武兼, 朴泰柱爲部將, 宋來翼爲訓鍊副正, 李行相·張爾樞爲訓鍊主簿, 金祈 應爲守門將, 鄭暘賓·金鑄爲訓鍊主簿, 宋必焜爲都摠都事, 朴弼正爲文兼, 李梫爲北虞...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光魯)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수백 명을 모병하였다.

유언협과 김광노를 종사관으로 삼고 아우 김응노(金應魯), 김범로(金範魯), 재종질 김치구(金致龜), 무인 유언흡(柳彦翕), 박중천(朴重天) 등을 비장으로 삼아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에게 격문을 띄워 창의 사실을 알렸다.

이어 발군(發軍)에 앞서 여러 동지들에게 “나라의 운이 불행하여 흉적이 거병하고 군신을 욕되게 하니 의를 저버릴 수 없다. 우리 동지는 한 번 죽어 충의를 세울지어다”라고 외치고 결의를 새로이 하였다.

청주성을 야습하여 적졸들을 잡아 목을 베고, 상당산성에 버티고 있던 위병사(僞兵使) 신천영(申天永)을 토벌코자 진격하던 도중 이미 참수되었다는 말을 창의사 박민웅(朴敏雄)에게서 듣고, 회군하여 잔당을 소탕하였다.

이 때 조정에서 내려온 충청도 초모사로 유숭(兪崇)이 위로하고 1등을 녹훈했다. 그 후 영남의 적도를 소탕하는 장군으로 천거되어 활약하였고, 황간현감에 제수되어 그 지역을 잘 진무(鎭撫)하였으며 관직이 절도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