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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방동 충주역 급수탑(鳳方洞 忠州驛 給水塔) 본문
봉방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방과 하방의 ‘방’자와 봉계동의 ‘봉’자를 합쳐 봉방동(鳳方洞)이라 하였다.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으로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북변면 7개 리 중에 방정동리(方井洞里)가 현재의 봉방동 지역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마을 이름은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서 확인된다. 이곳에 보면 봉계와 상하방이 나온다.
봉계와 상하방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주면 봉방리가 되었고, 금대, 신촌, 칠지, 대가미 일부 지역이 봉방리에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봉방리는 충주천 남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마을이 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었고,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었다. 봉방리는 봉방리1구와 봉방리2구로 나뉘어졌고, 1962년 7월 2일 직제 개편으로 봉방동으로 승격되었다.
충주시내의 서쪽 끝 달천강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시내에서 탄금대(彈琴臺)로 이어지는 탄금대로 남쪽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또 동쪽의 호암동과 안림동에서 시내를 거쳐 달천으로 흘러가는 충주천이 봉방동을 지난다. 충주천 하류 지역에는 논과 밭이 많아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다. 충주역 앞으로는 충원대로가 지나가 남북으로의 교통량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충원대로는 충주에서 제천과 원주로 이어지는 중요한 도로이다.(향토문화대전 참조)
급수탑은 석탄으로 물을 끓일 때 발생하는 증기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1928년 충북선(조치원-충주)개통시 만들어 진것으로 보이며 1967년 디젤기관차로 바뀔때 까지 사용하였다.1980년 충주역이 역전동에서 봉방동으로 이전하면서 급수탑만 남게 되었다.증기기관차는 1899년 부터 1967년 까지 운영되었으며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고 내륙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용되었다. 해방이후에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으나 디젤기관차에 밀려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철도교통과 관련된 근대산업시설의 상징적인 기치를 높이고자 옛 충북선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곳 급수탑을 보전하고 공원을 조성하였다.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1457
https://youtu.be/FhmA43FZHds?t=7 /충주역 급수탑 방송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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