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공산성 목사김효성청간선정비(公山城 牧使金孝誠淸簡善政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공주(公州)

공산성 목사김효성청간선정비(公山城 牧使金孝誠淸簡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8. 4. 07:33

 

 

공주 공산성 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목사 김효성의 선정비입니다. 목사김공효성청간선정무휼군졸비(牧使金公孝誠淸簡善政撫恤軍卒碑 )라는 기인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비수와 비신이 일체형이며 조금은 투박하지만 비수의 문양이 아름답습니다. .

 

김효성(1585∼1665)은 광해군 5년(1613) 생원이 되었으며,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정조, 윤인, 이위경 등이 인목대비를 해치려고 할 때 이들의 목을 벨 것을 상소하다 길주에 유배당하고 뒤에 진도로 옮겨 유배생활을 하였다. 인조반정으로 관직을 되찾아 의금부도사를 지냈으며 청안현감이 되었고, 이후 남원, 죽산의 부사와 공주, 청주의 목사 등을 두루 지냈다. 오랜 외직생활동안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청렴하고 강직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조선시대 공주 목사였던 김효성(1585~1651)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28년(순조28)에 세운 비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공주목사 김효성의 선정비.  공주목사 김효성은 청렴 결백하고, 백성을 잘 다스렸으며, 군대 통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목사김효성의비가 세워졌다.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구 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 서문 입구에는 47기의 조선시대 비석이 모여 있는데, 이중에 하나이다.  높이 약 2m의 화강암 비석으로, 비의 표면은 오랜 세월의 풍화(風化)로 인하여 변색이 심한 상태이다. 공산성 서문 내 비석군의 47개 비석 중 유일하게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비석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신과 이수는 원형을 유지하였으나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인 귀부는 없어져 사각형의 대좌로 대신하고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청주 중앙공원 김효성청백선정비(中央公園 金孝誠淸白善政碑)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tistory.com)

 

중앙공원 김효성청백선정비(中央公園 金孝誠淸白善政碑)

김효성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행원(行源)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승지를 지낸 김세

king6113.tistory.com

 

 

공산성 금서루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공주 관내에서 모아진 많은 선덕비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데, 그중에 공주목사 김효성(孝誠, 1585~1651)의 선정비가 있다. 김효성은 광주김씨로 영양부사 김수연(淵)의 아들이며, 좌승지 김희룡의 외손자이다. 그는1615년(광해군 7) 당시 권신이었던 이이첨의 사주로 정조, 윤인, 이위경 등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하자  반대하고 그들을 탄핵하였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길주와 진도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이후 임금의 신임을 받아 의금부도사에 올랐으며, 호조좌랑에 이어 한성부서윤, 형조정랑, 군기시첨정을 지냈다. 그 후 1635년 여산군수로 부임한 이후 남원·죽산의 부사와 공주목사, 청주목사 등 외직을 두루 지냈다. 1650년(효종 1) 청나라 사신 접대를 소홀히 하여 파직되었다가 얼마가지 않아 칠곡부사에 임명되었는데 나가지 않았다. 김효성이 공주목사로 역임한 시기는 1644년(인조 22)부터 1647년(인조 25)까지로 약 3년간 지냈다. 그는 잦은 외직을 지내면서 청렴하고 강직한 목민관으로 평가되어 공주를 비롯해 청주에도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무예에도 조예가 깊어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을 맡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김효성이 공주목사로 있으면서 어떠한 선정을 베풀었는지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지만, 그의 선정비의 전면에목사김공효성청간선정무휼군졸비(牧使公孝誠請簡善政撫恤軍卒碑)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공주목의 군사문제 부분에 있어 선정을 베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한편, 공산성 서문 금서루 앞 비석군에는 김효성의 선정비를 포함해 총 47개의 비가 세워져 있다. 공산성과 충남역사박물관 옆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세웠는데, 그중 23개가 충청도관찰사의 선정비이다. 김효성의 비는 서문 입구에서부터 5번째 것으로, 본래 비선거리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비석은 약 2m의 화강암으로 본래 이수와 귀부를 모두 갖추었으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는 과정에 귀부가 사라져 사각형의 대좌로 대신하고 있다[2021공주시지]

 

비수에 있는 구름문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