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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금관리 보은현감윤전추모비(米院面 錦寬里 報恩縣監 尹磌追慕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금관리 보은현감윤전추모비(米院面 錦寬里 報恩縣監 尹磌追慕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0. 9. 15:56

 

미원면 금관리에 있는 보은현감을 지낸 파평인 윤전의 추모비입니다.2001년에 후손들에 의해 비석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는 근세이후 이기심성의 학문도덕이 인류의 성인과 덕합 위업을 이룩한 산림학자 양반국풍이 일시에 성행하고 동방예의지국을 봉건하신 아조이신 보은현감 휘 전께서는 호학의 유종이시다. 선생의 휘는 전이요 관직은 통훈대부 행보은현감이시고 관은 파평이시다. 위 시조는 고려 벽상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 보국승록대부태사 휘 신달이시며 5세에 이르러 문숙공 휘 관은 여진을 토벌하여 동북지역에 구성을 쌓으니 추충좌리평융척지신국공신으로 파편현개국백으로 봉받아 후손의 본관으로 삼았다. 입조하여 조선조 태종시 추종익대좌명공신 이조판서 파평군 시 소청이시고 휘는 곤이시다. 공조참의 판광주목사증순충적덕병덕의보자공신 대광보국승족대부 의정부 우의정 영천부원군 휘 은이시니 선생의 조이시며 통정대부 행 사헌부 집의시며 호는 만둔암이시고 휘는 사석이시니 선생의 고이시다. 행직으로는 보은현감을 제수하시니 선생의 고명하심은 대의에 빛났다.

 

 

 

선생의 천품과 재는자질이 총명하고 영달의 기상이라 보은현감 재임시 고하신 만둔암 집의공께서 연산폭정으로 조정정사를 저멀리 하시고 이 곳 옥화대로 낙향하시어 아드님 삼형제분을 한자리에 부르시어 하교하시니 너희들도 이 나라 조정에서 모든 관직을 버리고 야인으로 있으며 조정의 녹을 탐하지 말라는 하교의 말씀에 아드님 삼형제분 께서는 그 즉시 관직에서 물러나시니 선생께서는 이 곳 어암에서 고와 같이 은거해 계시다 중종 18년 1523년 계미년에 향년 73세를 일기로 하여 서거하시니 그 후손들은 애통함을 금할수 없다.

 

 

배위는 경주김씨이시며 묘소는 청주산동어암후강자원합장이다. 선생의 아드님 형제분이 계시니 큰아드님 첨추공 휘 세형이시고 배위는 청송 심씨이시며 둘째아드님 별좌공 휘 세화이시고 배위는 한산이씨이시다. 선생의 고이신 만둔암 집의공 준엄하신 교훈에 민족적 도덕의 학문을 연마하신 선생의 탁월한 인품이 춘추전신과 성경정직 이기심성으로 인류를 사랑하신 선생의 심성이야 후손들의 귀감이 될것이다. 학문은 수신대법의 직자훈이요 사문에 정법이라 선생께서는 충효절에 의리정신이 충만하신 사대부이시다.

 

 

숭경보은정신과 예의조식에 심혈을 기울이신 선생이야 말로 동방에의지국에 표본이시기도 하시다. 고이신 만둔암 집의공께서는 연산조의 폭정으로 조정정사의 뜻을 이루시지 못하시고 옥화대로 낙향하시니 연산신유 유기1501년이다. 집의공께서 이 곳에 은거히시니 전국각지에서 유생들이 찾아와 만둔암 문하에서 74인의 문인들의 인제망성에 전념하던 곳이다. 가풍을 엄정히 하시여 치가지도에 앞장서시니 수신공부에 대법이시다.만둔암자 삼형제분이 계시니 수휘공 휘 오시고 둘째아드님 휘 전이시고 셋째 아드님 휘적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양반귀풍의 사대부이시다. 

 

 

선생의 고이신 만둔암 집의공 의 유지에 따라 심성의 뜻을 이루시지 못하시고 통한의 여생을 마치시었다. 선생께서는 평생을 일관한 성덕대업의 공직으로 우리나라 유학사에 찬연히 빛났다. 우리 후손들은 선생의 뜻을 따라 존엄성을 밝히고 화목한 가풍을 이루어 후손들의 자존심을 찾아 선생의 충효정신과 후손들에게 후학정신을 일깨워 주신 선생의 충절과 행벅을 추모하고 만사지탄이나 후손 도현은 선생의 치적을 추모코자 이글을 선하니 가족전통과 후손번연의 상징으로 제후손들은 천추만대수호모전하기 위하여 작은 정성이나마 분조후손들의 이름으로 선생의 추모비를 근수하는 바이다. 15대손 도현 근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