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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향교( 淸州鄕校) 본문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향교.
[개설]
최초 창건은 고려 때인 987년(고종 6)에 양성산 아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태조 때 교육제도가 정비되면서 전국의 각 지방에 향교가 설치될 무렵 재정비되면서 규모를 새롭게 하였다.
[제향인물]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5성(五聖), 송조 6현(宋朝六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한다. 원래는 동·서무에 나누어 제향하다가 현재는 모두 대성전에 모신다.
[위치]
현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67번지로 대성동용담초등학교 부근의 우암산(牛岩山, 338m) 남서쪽 자락에 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쪽 2리로 위치가 기록되어 창건당시에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었다. 1609년(광해군 1) 현의 남쪽 기산리로 옮겼다가 1683년(숙종 9)에 현감 이언기(李彦紀)가 다시 현 위치로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1728년 무신란이 일어나 향민이 모두 피난을 가 향교가 텅비자 최생도(崔生徒)가 21일간 향교를 지켰는데 반란군에게 잡혀 문초를 받자 사실을 말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알려져 관에서 포장하기도 하였다.(1816년 조연규 기문)
1818년부터 1819년 까지 관에서 지원하고 사림의 출연으로 명륜당 및 동·서무를 중수하였는데 당시 도유사는 김대옥(金大鈺)이고 장의가 여선근(呂善近), 장용익(張龍翼), 이헌길(李憲吉)이었다.(송후정 기문) 그 뒤 1879년(고종 16)에 다시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05년에 군수 이명재가 대성전을 중건하였으며, 1938년에 직원 김명제가 재임 중 대성전 중수에 이어 사재를 희사하여 사무실을 짓고 경의재라 제액하고 사무실로 사용하던 중 숭인관 신축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이후 명륜당 번와·도로보수 등 일대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동서양무가 불에 타 1981년에 서무를 1982년 동무를 복원하였다. 조국 광복 후 1957년에 처사 채진두의 희사금으로 증반실을 복원하였고 1969~1971년에는 시. 도 보조금과 유림성금으로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증반실, 경의재, 홍전문을 중수하고 교직사를 개축하는 등 창건 이래 최대중수를 단행하였다.
1973년에는 교궁주변시설과 환경정화공사를 완료하여 면모를 일신하였고, 1979년에 제기, 관복, 제복 등 비품을 구비하였다. 그 후에도 중. 보수공사가 이어져 1980년 담장개축, 대성전계단, 보도개설, 내삼문 번와, 홍전문개건, 축대개축을 시행하였으며 1985년 양현당, 1996년 복지회관, 2001년 숭인관 신축등으로 교육 및 복지시설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2006년도에는 명륜당 내, 외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재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주향교 교생(校生) 90인과 자모생(自募生) 70인이 있었으며, 재직(齋直) 40인, 노비 13인이 있었는데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문묘의 향사만 하게 되었고, 1910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문묘직원을 두어 관리하게 되었다.
[형태]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양현당, 복지회관, 숭인관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외삼문과 서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내삼문을 기준으로 문묘 공간인 대성전(大聖殿)이 후면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며, 전면 반 칸은 퇴칸으로 개방하였고,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하여 신위를 모시고 있다.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다. 동무는 1982년, 서무는 1981년 복원한 것이다. 명륜당(明倫堂)은 1638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내에 홍살문과 하마비, 그리고 향교중건에 기여한 공적비 4기가 있다.
[역사적 관련사항]
1444년(세종 26)에는 세종(世宗)이 초정(椒井)에 행차했을 때 청주향교에 『통감절요』, 『소학(小學)』 등 서적을 하사한 것과, 1464년(세조 10) 세조(世祖)가 요양 차 초정에 머물면서 문묘제향을 주관하여 삼남 제일의 향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1663년 송시열이 기문을 쓴 『청주향교지』가 전한다.
[현황]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9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39호로 재분류되었다. 현재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1930년대 청주 대성동의 향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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