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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면 대길리 효부창녕조씨기적비(北二面 大吉里 孝婦昌寧曺氏紀蹟碑)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북이면 대길리 효부창녕조씨기적비(北二面 大吉里 孝婦昌寧曺氏紀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2. 2. 08:02

 

대길리는 본래 청주군 산외이면의 지역으로 대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성동, 소 롱리, 지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길리라 해서 북이면에 편입되었다. 1953년 행정구역을 1구, 2구로 분할 현재 의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다. 대길리의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다.

  • 구룡말(소성동) : 새터말 서쪽에 있는 마을.
  • 뒷골 : 큰 작골 뒤에 있는 마을.
  • 새터말 : 대길 남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음말 : 작은작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
  • 작은작골 : 큰작골 동쪽에 있는 마을.
  • 큰작골(성동) : 대길 서쪽에 있는 마올. 뒷산에 고려 때 쌓은 성이 있다.

 

 

효부창녕조씨기적비(孝婦昌寧曺氏紀蹟碑)라고 써있으며 신, 구비가 나란히 서있습니다.기적비는 작은작골 입구에 있습니다.

 

창녕 조씨는 청원군 북이면 대길리 인동장문(仁同張門)으로 시집온 효부이다. 조씨는 내수읍 저곡리에서 조병윤(曺秉允)의 3녀로 출신하였다. 16세에 장기벽(張基璧)에게 시집오니, 당시 시가는 가세가 매우 빈곤하였다. 그러나 조씨는 근검절약하며 시부모께 효도하고 남편을 잘 받들었다. 시아버지는 천성이 바로 꾸짖기를 좋아하여 이해할 수 없는 대성질책(大聲叱責)이 잦았다. 그러나 부인은 추호도 반항하지 않고 복종하여 낮에는 나무를 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였다. 시어머니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니 조씨는 낭성준령을 누차 오르내려 산약을 채취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니 그 슬퍼함이 남달랐다. 며느리 효심에 늦게나마 감동한 시아버지는 꾸짖기를 자제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며느리에게 베풀다가 83세로 별세하였다. 이는 34년간을 효도로써 봉양한 조씨의 효성에 연유한 바 크다.
청주향교의 효부상의 비롯하여 1993년 청원군 북이면 대길리 2구 입구 산기슭에는 효부비를 세웠다.

 

신비와 구비가 나란히 어깨동무 하고 있습니다.
작은작골 이라는 지명이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