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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상천면 대전리 효자허헌효자각(於上川面 大田里 孝子許憲孝子閣) 본문
효자허헌지문(孝子許憲之門)이라고 된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어상천면 대전리 입구인 효자문거리에 있습니다.
허헌은 어머니가 병환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구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부친이「어찌 내앞에서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느냐」하고 꾸짖어 감히 실행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장례를 치른 후 형과 동생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홀로 묘소에 남아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계속 곡을 하고 있어 눈물이 옷깃을 다 적시었고 폭우가 내리는 중에도 상복이 젖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부친이 세상을 떠날 즈음에「너는 몸이 매우 약하니 내가 죽은 후 여막(廬幕)을 차리지 말라. 너무 지나쳐 몸을 상하게 함은 나의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이로 보아 부친도 아들의 효성이 지극함을 알았고 부친 또한 지극히 자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시묘하던 중 추운 겨울에 한자나 쌓인 눈을 쓸고 밤새도록 엎드려 있었으나 춥고 주린 기색이 없었다. 이에 사람들이 탄복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참으로 효성스럽구나. 전에는 큰비가 와도 옷이 젖지 않더니 나중엔 큰 눈이 와도 추위조차 틈타지 못하는 구나」라고 하였다.
허 헌(許 憲)은 자는 형삼, 호는 학재, 본관은 양천으로 허 증의 둘째 아들이다. 효자인 아버지의 본을 받아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어머니의 병환에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돌아가시자 묘소 앞에서 통곡하였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나 옷이 조금도 젖지 않으니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6년간의 여막 생활을 하고 나서도 80이 넘도록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빠짐없이 성묘하니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단양유림의 추천으로 효자각이 세워졌다. <문헌>허씨세보
어상천면 대전리에서 태어난 허헌(許憲)의 효자각 이다. 허헌은 허증의 둘째 아들로 자(字)는 형삼(亨 三), 호(號)는 학재(鶴齋)이다. 나이 80이 넘도록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하므로 이를 단양 유림회에서 알고 전국 각 향교 유림들의 정성을 모아 어상천면 대전리 황학동에 효자각(孝子閣)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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