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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용방리 송갑조유기비(伊院面 龍坊里 宋甲祚 遺基碑) 본문
물 오른 모과나무가 이쁘다.
인적이 끊어진 집은 속절없이 세월을 입고 있지만 오는 계절은 긴 그림자 끌며 무너지는 집터위로 가득하다.
사람의 온기를 잃은 집은 무너져 내리고 송갑조 유기비는 오랫만에 보는 인적에 많이 반가운 모양이다.
인적없는 집터 뒤로는 대나무 숲이 소리내어 운다.한 쪽에 쌓여져 있는 장작더미는 집주인의 고단함이 뭍어있다.
집터로는 참 좋은자리인 듯 보인다.스레이트 지붕위로 지난 세월은 흩어지고 한쪽 양지쪽에 자리한 송갑조 유기비만 집터를 지키고 있다. 네비를 찍으니 주위를 빙빙돈다.
이 비는 송갑조(1574-1628)가 살던 집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4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송갑조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원유元裕 호는 수옹遁翁이고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이다 그는 1617년(광해군 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인목 대비의 유폐를 반대 하다가 유생의 명단에서 삭제되어 벼슬길이 막히었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때 강릉 참봉을 지냈으며 다음 해 이괄의 난 때 공주(公州)로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 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 사이에 화의가 성립 되자 분개하여 벼슬을 버렸다. 송갑조는 본래 회덕에 살았는데 1594년(선조27)에 이곳으로 이사하여 선산 곽씨와 결혼하여 시열을 낳았다. 비석은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을 갖춘 일반형으로 크기는 높이 116cm 폭 38cm 두께 20Cm이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인 수옹睡翁 송갑조宋甲 祚의 유기비로서 장방형 비좌 위에 높이 116㎝, 넓이 38㎝, 두께 20㎝의 비신이 세워져 있다. 전면에는 “睡翁宋先生遺基(수옹송선생유기)”라고 해서로 쓰고, 후면에는 송갑조의 생애를 기록 하였다.
은진송씨 송창공파 | 수옹 경헌공 송갑조(13世, 송시열의 父, 정랑공종중각하 우암문정공파)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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